카메라를 주시한 채, 방송의 구성에 맞게 깔끔한 진행을 하던 유재석이 요즘 웹 예능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커피를 마시며 게스트와 한참 떠들고 의식의 흐름처럼 이야기는 자꾸 옆길로 새죠. 비교적 편안한 분위기 속에 흐르는 이 콘텐츠를 사람들은 몇십 분, 길게는 한 시간이 넘도록 봅니다. 그러나 이는 그저 사람들이 ‘날것의 콘텐츠’를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렇다면 요즘 사람들은 왜 이런 콘텐츠를 즐기는 걸까요? 이번 아티클에선 웹 예능의 변화와 그 이유를 살펴볼게요!
📺 완성된 ‘프로그램ʼ보다 사람들이 있는 ‘자리ʼ
기존 방송 예능에는 꽤 명확한 경계가 있었어요. 카메라 앞에는 출연자가 있고 카메라 뒤에는 제작진이 있었죠. 촬영을 위한 세트를 만들고 진행 순서를 정한 뒤, 방송에 필요하지 않은 순간은 편집했습니다. 시청자는 잘 정리된 완성품을 전달받았죠. 그런데 최근 유튜브 예능에서는 이 경계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어요.

제작진의 목소리와 웃음이 자연스럽게 들어오고, 때로는 제작진 자체가 하나의 출연자처럼 콘텐츠에 등장해요. 촬영 장소 역시 완벽하게 꾸며진 스튜디오에 머물지 않아요. 사무실과 회의실, 숙소와 집까지 제작 과정의 공간들이 콘텐츠 안으로 들어옵니다. 과거라면 방송 밖의 순간이었던 장면들이 이제는 오히려 볼거리가 된 거예요.
덕분에 시청자가 알게 되는 것도 많아집니다. 출연자뿐 아니라 누가 촬영하고 있는지, 제작진끼리는 어떤 관계인지, 누가 어떤 말을 자주 하는지까지 조금씩 익숙해지죠. 콘텐츠를 보는 사람에서 그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자리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으로 바뀌는 겁니다. 잘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구경하는 느낌보다 사람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 슬쩍 끼어든 듯한 느낌. 최근 웹 예능이 만들어내는 친근함은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 화려한 세트보다 ‘늘 보던 공간ʼ이 중요해진 이유
그런데 시청자가 그 자리에 함께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은 대화만이 아니에요. 공간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런 콘텐츠에서는 거대한 스튜디오 대신 사무실, 집, 카페, 식탁처럼 사람들이 실제로 머물 법한 일상적인 공간이 자주 등장하죠.

‘차린건 쥐뿔도 없지만‘은 이영지의 자취방과 친할머니댁을 촬영 공간으로 활용했어요. 무언가 대단한 일이 벌어지는 무대가 아닌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누군가의 집으로 초대하죠. 완성된 세트가 아니라 실제 생활 공간을 보여주기 때문에 시청자는 그 사람의 일상에 조금 더 가까이 들어간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단순히 공간이 ‘리얼하다ʼ는 사실만이 아닙니다. 같은 장소가 반복해서 등장한다는 것이 중요해요.
처음에는 낯선 집이지만 영상을 계속 보다 보면 어디에 누가 앉는지, 테이블이 어디에 있는지, 출연자들이 어느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는지 자연스럽게 기억하게 됩니다. 직접 가본 적은 없는데 이상하게 익숙한 장소가 되는 거죠. 친구 집에 몇 번 놀러 가다 보면 소파 위치를 알고, 늘 누가 어느 자리에 앉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처럼요. 같은 장소가 반복될수록 ‘나도 저곳을 알고 있다ʼ는 감각이 생깁니다. 화려함을 덜어낸 공간이 오히려 콘텐츠와 시청자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셈이에요.

TEO의 ‘살롱드립‘ 역시 마찬가지예요. 시즌 1에서는 준비된 세트와 의상을 활용해 정제된 분위기에서 비교적 정돈된 토크쇼 형식을 유지했어요. 반면 시즌 2에서는 이러한 연출적 요소를 덜어냈죠. 세트장이 아닌 공간에서 편안한 옷차림으로 촬영하고 스태프와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모습까지 그대로 담아내며 완성된 방송을 보여주기보다 편안하고 친근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자연스러움과 친밀감을 강화했습니다.
👥 새로운 게스트보다 ‘이어지는 관계ʼ
공간이 반복될수록 익숙해지는 것처럼 사람 사이의 관계도 반복될수록 맥락이 생깁니다. ‘핑계고‘가 보여주는 재미도 단순히 “유재석과 게스트가 편하게 이야기한다”는 데에서 끝나지 않아요. 같은 사람들이 여러 번 등장하고, 이전에 나눴던 이야기가 다시 언급되고, 출연자들 사이의 관계가 다음 콘텐츠로 이어지죠.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평범한 농담이지만 이전 영상을 본 시청자에게는 왜 웃긴지 알고 있는 말이 되기도 하고요. 이 과정에서 시청자는 더 이상 매회 새로운 게스트를 소개받는 사람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 어떤 관계인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돼요.

최근 큰 인기를 끌었던 뜬뜬의 ‘라면 먹고 올래?’도 이를 잘 보여주죠. 핑계고에서 이미 여러 차례 호흡을 맞춘 사람들이 다시 만나 라면을 먹으러 가고 차를 타고 이동하며 이야기를 나눠요. 새로운 게임이나 강한 미션을 추가하기보다 이미 형성되어 있는 관계를 다른 상황으로 옮겨놓은 셈이죠. 그래서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콘텐츠가 성립합니다. 시청자는 이미 누가 누구에게 어떤 말을 할지, 서로 얼마나 편한 사이인지, 어떤 장난을 주고받는지를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까요. 콘텐츠 하나가 끝날 때 관계까지 초기화되는 것이 아니라 지난 회차에서 쌓인 관계가 다음 회차의 재미가 되는 구조예요.
📱 왜 하필 지금 이런 콘텐츠가 더 편해졌을까?
그렇다면 왜 이런 콘텐츠가 하필 지금 더 편하게 느껴지는 걸까요? 시청자가 콘텐츠 환경에 피로를 느끼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하루 종일 수많은 자극을 받습니다. 숏폼은 몇 초 안에 시선을 붙잡아야 하고 SNS에는 새로운 정보가 끊임없이 올라오며 OTT를 켜면 아직 보지 못한 작품이 계속 추천되죠.
모든 콘텐츠가 끊임없이 “나를 봐달라”라고 경쟁하는 환경인 셈이에요.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적극적으로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콘텐츠가 하나의 선택지가 되기 시작했어요. 큰 사건이 없어도 되고, 몇 분마다 웃음이 터지지 않아도 되고, 잠깐 내용을 놓쳐도 다시 따라가는 데 문제가 없는 콘텐츠 말이에요. 친숙한 사람들이 별일 없이 이야기하는 영상을 켜두는 것 자체가 하나의 시청 경험이 되는 겁니다. 과거의 예능이 시청자의 시선을 최대한 오래 붙잡아두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최근 일부 웹 예능은 시청자의 일상 옆에 자연스럽게 머무르는 방식을 택하고 있어요. 집에서 밥을 먹으며 보고, 다른 일을 하면서 틀어두고, 자기 전에 다시 찾아오는 콘텐츠. 집중해서 봐야 하는 프로그램이라기보다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익숙한 자리에 가까워지고 있는 거죠.
☕ 친근함은 ‘날것ʼ보다 ‘쌓이는 것ʼ
그래서 최근 웹 예능의 인기를 단순히 “요즘 사람들은 꾸미지 않은 콘텐츠를 좋아한다”는 말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해요. 카메라가 덜 정돈되어 있어서도, 세트 제작비가 적어서도 아닙니다. 오히려 제작진을 반복해서 마주치고, 같은 공간을 여러 번 방문하고, 출연자들의 관계를 오래 지켜보면서 콘텐츠 안에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점점 늘어나는 과정이 중요하죠.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시청자였지만 어느 순간 “저 사람은 원래 저렇지”, “둘은 만나면 항상 저렇게 장난치지”, “여기 전에 나왔던 곳인데”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그만큼 콘텐츠와의 거리도 가까워집니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리얼하게 찍을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자연스럽게 익숙해지게 할 것인가”에 가까워 보여요. 한 번 크게 웃기고 떠나는 콘텐츠보다 별일이 없어도 다시 찾아갈 수 있는 콘텐츠. 요즘 예능이 화려함을 조금씩 덜어내는 이유는 어쩌면 새로운 것을 계속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래 머물 수 있는 익숙한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인지도 모릅니다.
*외부 필진이 기고한 아티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