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마케팅은 오랫동안 서점을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책이 서점에 놓이고, 독자가 서점에 와서 책을 고르는 방식으로요.
마케터들은 그 만남의 접점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고자
독자들이 모여 있는 서점에서 고군분투해 왔고요.
그런데 2019년, 민음사는 유튜브를 통해 그 방향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서점에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콘텐츠가 사람을 모으고,
모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독자가 되는 구조를 만든 것이죠.
그렇게 7년이 지난 지금 민음사TV는
브랜드 자체 팬덤을 넘어 출연 직원 한 명 한 명에게 팬이 생길 정도로
고객과의 관계 지표가 남다른 채널로 성장했는데요.
민음사의 콘텐츠를 지금까지 성장시켜 온
마케팅부 조아란 부장을 만나 그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습니다.
민음사 마케팅부 Minumsa
조아란 부장
서울 강남구 민음사 본사, 2026년 6월 15일
환갑 출판사가 1020의 최애가 되기까지
ㅡ 민음사TV에서 2019년부터 꾸준히 콘텐츠를 만들어오고 계시는데요. 구독자 약 50만 명 규모로 성장하기까지 변곡점이 된 콘텐츠가 있었나요?

가장 처음 민음사TV의 가능성을 실험해 볼 수 있었던 건 두 편집자가 책 얘기를 나누는 토크 중심 콘텐츠인 <말줄임표>였어요. 시리즈 초반부터 반응이 좋았고, 출연한 두 편집자의 케미도 좋았거든요.
그런데 1년 반 넘게 진행하다 보니 편집자의 책 얘기만 보여주기에는 한계가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책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부담 없이 볼 수 있도록 <출판사 마케터의 갓생 살기>나 <문화생활비 언박싱>처럼 책과 무관한 콘텐츠를 시작했죠.
그러면서도 민음사의 대표 시리즈인 <세계문학전집> 관련 콘텐츠는 꾸준히 만들었는데요. 초반 반응이 폭발적이지는 않아도, 영상 시장에서의 스테디셀러처럼 꾸준히 조회수가 오르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교양 콘텐츠와 예능 콘텐츠의 균형이 맞아지는 순간이 온 것 같아요. 예전에는 책 얘기를 안 하면서 구독자를 모을 방법을 고민했다면, 이제 책 얘기를 하면서도 팬을 모을 수 있는 단계까지 성장한 거죠.
ㅡ 그렇게 채널이 커지다 보면 주요 고객층이 정체될 법도 한데, 민음사는 창립 60주년 출판사임에도 요즘 1020세대에게까지 힙하다는 평을 모으고 있죠. 그 원동력이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트렌디한 것에 도전하는 걸 즐기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책의 운명이라는 관점에서 마케터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거든요.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어떤 책이 잘 팔릴지는 알 수 없고, 아무리 마케터가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판매 서포트 이상의 역할을 하기 어려울 때도 많으니까요.
그래서 당장 눈앞의 신간 한 권을 파는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거시적인 활동을 늘리기 위해 노력했어요. 유튜브 민음사TV도, 도서 구독 멤버십 서비스인 민음북클럽도 그 활동의 일환이었고요.
특히 북클럽에 가입하시는 분들은 관여도가 높은 코어 고객인데요. 올해에는 민음북클럽이 오픈 1시간 만에 회원 1만 명을 모았을 정도로 유입이 크게 늘면서, 더 많은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기반이 단단해졌죠.
ㅡ 그 흐름이 실제 실적으로도 이어진 것 같은데요. 민음사의 매출과 영업 이익이 크게 성장하면서 많은 매체가 민음사TV를 그 주역으로 꼽았는데, 실제로 체감이 되시나요?
사실 지금까지는 매출이 올라도 콘텐츠의 특성상 민음사TV의 영향이라고 딱 잘라서 말하기는 어려웠어요. 베스트셀러가 나온다고 해도 그게 유튜브 때문만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저희끼리는 우스갯소리로 “우리 채널에서 책 소개하자마자 갑자기 서점 베스트셀러에 올라갈 만한 영향력은 언제 가질 수 있나”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제 민음북클럽을 보면 그 영향이 직접적으로 느껴져요. 북클럽에 가입하실 때 가입 선물 도서로 원하는 책을 골라 받아보실 수 있는데, 상위권에는 항상 잘 알려진 세계문학전집 스테디셀러들이 고정으로 있었거든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유튜브에서 소개한 책이 웰컴 도서 베스트 목록에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보면 신간과 구간의 시너지로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기도 한데요. 신간에 마케팅 비용을 집중적으로 투자하다 보면 나머지 구간은 매몰되기 쉽잖아요. 그래서 같은 비용이라도 단순 광고 집행으로 신간 매출을 끌어올리기보다는, 콘텐츠 제작에 투자해 구간도 꾸준히 팔릴 정도로 지속 가능한 브랜드 자산을 만든다고 보는 거죠.
파는 콘텐츠 vs 사람을 모으는 콘텐츠
ㅡ 민음사TV의 콘텐츠는 출연하는 직원 한 명 한 명이 캐릭터처럼 느껴질 정도로 재미있습니다. 직원의 팬까지 생기는 브랜드 채널은 흔하지 않은데, 그 비결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사실 저희도 늘 신기해요. 다른 브랜드에서도 직원들이 나와서 하는 콘텐츠가 많아졌는데 왜 유독 민음사TV의 콘텐츠가 재밌게 느껴질까 싶어서요. 그런데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접근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브랜드 채널은 팔고자 하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있고 그 목적에 맞는 직원을 매칭하는 방식일 것 같은데요.
저희도 기술적으로는 그런 방식으로 돌아가긴 하지만, 채널 초기부터 이어진 기조는 반대예요. 정해진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과 방식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출연할 사람을 먼저 정한 후 그 사람의 매력이 가장 꾸밈없이 드러날 수 있는 주제와 포맷을 설정하죠. 예를 들어 제가 출연한다면, 제가 쇼핑을 많이 하는 사람이니 ‘왓츠 인 마이 백’ 콘텐츠를 기획하는 식으로요.
ㅡ 그런 기조가 실제 콘텐츠 제작 방식까지도 이어지나요? 편집자부터 마케터까지 다양한 직원들이 출연하는 구성이나, 화려한 전문 스튜디오 대신 사옥 내부에서 촬영하는 것도 유사한 맥락 같은데요.

맞아요. 말하자면 가장 민음사TV스러운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방식인 거죠. 사실 유튜브를 시작하기 전부터 저희끼리 회의할 때도 “저 친구 되게 재밌다”, “우리 회의 재밌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많았는데, 그런 것들을 콘텐츠 기획할 때 많이 가져오고 있어요.
차·부장이 된 사람들의 신입 시절 실수 이야기를 듣는 <부장 실수 배틀>의 경우 ‘직장인 고충’ 맥락으로 민음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해서 만든 콘텐츠인데요. 해당 콘텐츠에 출연했던 홍수현 부장은 유튜브 출연 빈도가 높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구독자분들 사이에서 인기가 굉장히 많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어요.
아무리 좋은 메시지라도 듣는 사람이 열 명뿐이면 파급력이 없잖아요. 사람들이 일단 채널에 모여야 원하는 메시지도 전달하고 책도 팔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브랜드 메시지를 뒷순위로 두고, 우선 “여기 재밌는 거 있다”라고 알려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하는 전략을 택했죠.
ㅡ 출판사 채널인데 책 얘기를 뒷순위로 두다 보면, 정작 채널 운영의 목적이 희석되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은 없으셨나요?
솔직히 그 걱정은 별로 안 했어요. 이런저런 변주를 하면서도 저희가 파는 상품에 대해서 의심한 적이 없었거든요.
유튜브에서 책 소개를 하나도 안 하고 재밌는 척해서 사람을 모았을 때 “정작 민음사 책은 볼 거 하나도 없던데?” 이런 말이 나올까 봐 두려웠다면 지금처럼 못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상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으니까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다양한 시도 최대한 많이 해보고, 어떤 게 우리 브랜드랑 맞는지 핏을 맞춰가는 게 가능했던 거고요.
ㅡ 앞으로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요?

지금은 오디오 콘텐츠에 공을 들이고 있어요. <말줄임표>처럼 책 얘기를 나누는 명맥을 이어가고 싶어서 팟캐스트 콘텐츠를 확장하고 있어요. 앞으로 오디오 콘텐츠 수요가 더 늘어날 것 같아서 투자를 늘려가려고 해요.
조금 더 먼 얘기지만 해외 시장도 생각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해외 저자분들이 방한하면 “한국에 한 번만 와주세요”하고 모셔야 했는데, 요즘은 분위기가 달라졌거든요. 한강 작가님 수상 이후로는 특히 실무단에서도 체감이 될 정도로 해외 저자분들이 먼저 한국 독자분들을 만나고 싶어 해요.
그걸 보면서 국내 도서의 판권이 해외에서 간택되기를 기다리는 방식 말고, 당장 큰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직접 해외에서 팔 수 있는 바이링구얼 상품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한글이라는 언어 장벽이 조금씩 낮아지고 있는 지금이 시도해 볼만한 타이밍인 것 같아요.
17년 차 마케터가 읽어온 시장의 문법
ㅡ 17년 동안 민음사에서 쭉 일하셨는데, 마케터로서 인식이 가장 크게 바뀐 시점이 있었나요?

특정 시점에 인식이 바뀌었다기보다는 중심 채널이 바뀔 때마다 일 자체가 통째로 바뀌는 것 같아요. 제가 2010년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민음사에 SNS 계정이 하나도 없었어요. 서점을 통해서만 독자와 만나고 책을 유통하는 방식이었다가, 어느 날 페이스북 등 SNS가 생기면서 그 접점이 넓어졌죠.
사실 콘텐츠 마케팅이라는 개념도 그때 막 생겨났어요. 입사 초기만 해도 마케터로서 담당 서점이 가장 중요했는데, SNS를 운영하면서부터 여러 가지 온라인 채널을 더 중요하게 보게 되었고요.
최근에는 단순 채널 운영을 넘어 브랜드의 팬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고민을 훨씬 많이 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브랜딩이 중요해진다는 인식 정도였다면, 지금은 브랜딩의 중요성이 상품 자체의 중요성과도 거의 역전되는 시기가 온 것 같아요. 예전엔 마케팅의 100이 상품이었다면, 지금은 50대 50을 지나는 국면인 것 같고, 앞으로는 브랜딩이 거의 100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ㅡ 그렇게 계속 바뀌는 환경 속에서도 마케터로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으셨던 노하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초보 상태로 계속 머무는 걸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일정 연차 이상이 되면 ‘전문가’가 돼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는데, 다른 직군도 그렇겠지만 마케터들이 그 고민을 유독 심하게 하는 것 같거든요. 주류가 되는 채널부터 트렌드까지 시장을 구성하는 모든 게 계속해서 바뀌니까요.
그래서 오히려 노하우가 쌓이지 않는 것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지금 유튜브를 열심히 키워왔지만, 몇 년 뒤에는 유튜브를 아무도 안 볼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렇지만 채널이 달라진다고 해서 제가 쌓아온 콘텐츠의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아요. 환경이 변한다면 그에 맞춰 또다시 초심자로서 새로 시작하면 되고요.
🎙 Editor’s Comment
마케터가 자기 상품을 믿지 못하면 마케팅이 불안해집니다. 조회수가 조금만 떨어져도 방향을 바꾸고, 결국 시장이 원하는 것만 쫓게 되죠. 민음사TV가 7년 동안 그러지 않을 수 있었던 건 판매하는 책 그 자체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케팅이 아무리 화려해도 알맹이가 없으면 결국 무너진다는 걸 알고, 우리 상품에 알맹이가 있다는 걸 믿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콘텐츠. 단발성으로 흩어지는 마케팅과 오랜 시간 쌓이는 마케팅의 차이는 결국 확신에서 갈립니다.
마케터가 먼저 자기 상품을 믿어야 한다는 것. 가장 기본적인 전제이지만, 상품보다도 콘텐츠로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우선이 된 지금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는 원칙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