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이 사진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할리우드 영화 오프닝처럼 장황해 보이는 이 사진은, K-POP 그룹 ‘엑소’의 데뷔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인데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SM엔터테인먼트는 ‘엑소’의 각 멤버에게 고유한 초능력이 있다는 세계관을 부여해 상당히 도전적인 컨셉을 시도했었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아이돌에게 이런 세계관을 입히는 것이 너무나도 파격적이었기 때문에, 팬들 내부에서만 소비되었을 뿐 대중적으로 이 컨셉이 소비되지는 못했어요. (무엇보다 몇몇 멤버들이 탈퇴하면서 초능력 세계관은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었다는 후문…)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세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메타버스에서 친구를 사귀고, NFT에 관심이 폭발하고, 버추얼 아티스트가 등장하는 요즘 세상! 옛날에는 다소 중2병(?)처럼 취급되었던 K-POP 세계관이 이제는 재미있는 콘텐츠로 먹히기 시작한 거죠. ‘광야로 걸어가♬’만 들어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K-POP 팬들에게 세계관이 있는 아이돌은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예요.
잠깐! “그래서 내가 K-POP 세계관을 왜 알아야 하는데?”라고 생각하셨다면, 본론은 지금부터예요! 사실 K-POP 세계관은 팬덤에서 무조건적인 지지를 받는 것은 아니랍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기획하지 않는다면 팬들에게 질타받을 수 있는 양날의 검과 같아요. 특히 브랜드에서 아이돌을 모델로 세우면서 그들의 세계관을 찰떡같이 활용한다면 시너지는 두 배가 되지만, 세계관에 슬쩍 발만 담가볼까? 하고 도전했다가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지도 몰라요. 그럼 K-POP 세계관은 어떻게 활용하는 게 좋을지 알아볼까요?
SM은 아주 오래전부터 세계관 마케팅에 진심이었는데요. 엑소 이후로 잠시 주춤했던 세계관 마케팅은 ‘NCT’라는 무한 확장 그룹을 시작으로 시동을 걸더니, 가상 세계인 ‘광야’를 접목한 ‘에스파’의 세계관으로 드디어 빵! 터졌어요. (SM 세계관 = SMCU 자세히 알아보기)
에스파의 성공을 확인한 SM은 발 빠르게 ‘광야 세계관’을 소속 아티스트들에게 부여하고, 팬들에게는 SMCU 디지털 여권 까지 만들어주면서 세계관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게 만들었는데요. 특히 눈여겨볼 점은 일명 ‘슴덕(SM덕후)’으로 유명한 유튜버들에게 광야행 티켓(사실 콘서트 티켓이죠)을 전달하면서 너도나도 ‘광야 시민 인증샷’을 찍게 하는 전략적인 방법도 사용했다는 사실!
SM이 이렇게 ‘광야’에 진심인 만큼, 팬들도 SMCU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데요. 팬들끼리 세계관을 분석하고 소비하는 것이 하나의 플레이 요소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유튜브에 ‘SM 세계관’을 검색하면 대학교 강의 수준의 세계관 분석 영상이 가득하고, 나무위키에서는 논문 수준의 SMCU 분석을 볼 수 있을 정도예요.
BTS에게도 SMCU처럼 세계관이 있었다는 것, 혹시 알고 계셨나요? BTS는 2017년 ‘화양연화’ 앨범을 기점으로 2020년까지 BU(BTS Universe)라는 세계관을 구축해왔는데요. BU는 타임워프를 다루고 있고 심지어 앨범 수록곡들까지 세계관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상당히 복잡한 내용을 담고 있어요. 게다가 공식적인 스토리를 알기 위해서는 화양연화 앨범에 랜덤으로 동봉된 12가지 스토리북을 드래곤볼 모으듯 모아야 했답니다. 결국 스토리를 이해하려면 앨범도 많이 사야 했으니… 소속사 입장에서는 일석이조의 마케팅이었죠.
당시의 빅히트(지금의 하이브)는 공식 트위터에 히든 스토리를 공유하거나, 세계관에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가상의 꽃 ‘스메랄도’를 활용해서 스메랄도 꽃집 주인이 운영하는 가상 블로그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관을 담은 공식 소설책 굿즈와 네이버 웹툰 ‘화양연화’까지 연재하면서 열과 성의를 다했으니…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알 수 있겠죠?
하지만 BTS가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세계관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은 점점 줄어들었는데요. 2020년 9월 3일, 스메랄도 꽃집이 블로그 운영 중단을 선언하면서 팬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세계관 마케팅이 끝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죠. 그러나 그로부터 며칠 뒤, 갑자기 공식 계정에 ‘BTS Universe Story’라는 영상이 업로드되면서 세계관이 다시 부활하나 했는데…! 이때부터 시작이었죠. BTS의 세계관이 길을 잃은 것이…
공식적인 세계관 영상인 줄 알았던 것은 알고 보니 넷마블과 합작으로 만든 게임 광고였는데요. 세계관이 반영된 게임이 나오는 줄 알고 기대했던 팬들은, 게임 공개 이후 당황스럽기만 했습니다. 공개된 게임은 기존의 BU 세계관과는 전혀 상관없는 ‘매니저가 되어 방탄소년단 육성하기!’ 게임이었기 때문이죠. 기존 세계관과 상관 없는 게임에도 꾹 참던 팬들에게 불을 지핀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요. 바로 난데없이 호랑이 사냥꾼(?)이 된 BTS의 ‘착호’ 세계관입니다.
‘착호’ 세계관 역시 과거의 ‘화양연화’처럼 다양한 플랫폼에서 소개되었는데요. 멤버들이 등장하는 세계관 MV와 OST, 웹 소설, 웹툰까지 활용해서 적극적으로 홍보를 했으나 팬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습니다. BTS의 앨범과도 상관없고, 과거의 BU와도 상관없었거든요! 이처럼 뜬금없는 세계관은 오히려 소속 아티스트를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불러일으켰어요. 뿐만 아니라, 하이브는 방탄소년단 외에도 소속 가수인 투모로우바이투게더와 엔하이픈도 비슷한 방식의 웹툰으로 소비했는데요. 웹툰 퀄리티 자체는 좋지만, 억지로 아티스트와 끼워 맞춘 세계관 때문에 몰입도가 깨진다는 반응이 대다수였습니다.
이처럼 세계관 마케팅은 자칫하면 길을 잃고 팬들의 마음도 잃을 수 있는 조심스러운 소재인데요. 그럼에도 세계관을 찰떡같이 활용해서 브랜드에게 굉장히 좋은 이미지를 심어준 사례도 있습니다. 바로 국민은행과 에스파의 만남인데요.
이 영상에서는 국민은행의 은행장과 에스파 멤버들이 메타버스 공간 안에서 만나는 장면이 연출되는데요. 단순히 모델인 에스파의 세계관만 활용한 것이 아니라, 향후 진행할 메타버스 신사업과도 연계 를 시킨 점이 아주 흥미로웠어요. 단순 세계관 활용이 아닌 사업으로의 확장을 보여준 것이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냈는데요. Z세대를 끌어올 목적으로 에스파의 세계관을 적극 활용하고, 더 나아가 메타버스 내에 국민은행 ‘광야 지점’까지 운영할 계획이라고 하니… 얼마나 큰 그림을 가지고 에스파를 모델로 섭외했는지 느껴지죠?
이처럼 K POP 세계관을 브랜드 마케팅에 활용하는 것은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는 물론 young한 타겟까지 끌어올 수 있는 굉장히 매력적인 전략이에요. 다만 세계관 마케팅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꼭 기억해 두세요!
세계관 마케팅 성공 비결
✅ 중간에 포기하거나 단기간에 끝내지 말 것! 장기간에 걸쳐서 대중들에게 조금씩 스며드는 것이 중요해요.
✅ 실물로 볼 수 있고 인증하기 좋은 굿즈에 세계관을 녹이는 것을 추천해요. 팬들의 바이럴로 세계관 홍보도 되고 굿즈 홍보도 되니 일석이조! ex) 광야 여권, 화양연화 소설책 등
✅ 아티스트의 이미지를 과소비하는 것은 금물! 아티스트의 이미지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세계관을 파악해서 반영하는 것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