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어떤 고민을 했을까요? 한 문장의 인사이트로는 정리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인터뷰로 전달합니다. → 더 많은 인터뷰 보러 가기
기획자로서 다양한 프로젝트에 투입되면서도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컨셉 수립! 초기 단계에 모두를 이해시키는 명쾌한 컨셉이 나올 때도 있는가 하면, 컨셉이 불분명해 한참 진행중인 프로젝트의 방향성이 흔들리는 때도 있죠. 컨셉에 대한 피드백을 듣고 나면 수정 방향이 이해되기는 커녕 ‘그래서 도대체 뭘 어떻게 고치라는 거야😂’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저뿐만이 아닐 거예요. 결과물로 나오는 것은 간단한 어구인데, 그 고민 과정엔 통찰력과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센스도 있어야 하죠. 때문에 피드백 주는 것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좋은 컨셉이 뭔지,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도 난감해요. 누가 가르쳐 준 적도, 배울 수 있는 곳도 없고요!
이런 고민은 크리에이티브를 다루는 직군에 한정된 것도 아닙니다. 광고기획자, 커머스, 사업개발 등 고구마팜에 있는 다양한 직군 모두가 경험해본 적 있는 어려움이죠. 오늘 아티클은 이런 고민에 힌트를 알려줄 컨셉의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작성되었습니다. <컨셉 수업>의 한국 출간을 맞아 저자인 호소다 다카히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하 호소다 디렉터)에게 컨셉에 관해 궁금한 것들을 모두 모아 질문하는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제가 느낀 소감부터 먼저 말하자면, 컨셉은 문제 해결을 위한 생각 툴에 가까워요. 따라서 문제 해결을 숙제로 갖고 있는 분들(=모든 직장인😉)이라면 오늘 아티클이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 인터뷰이 : 호소다 다카히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TBWA/HAKUHODO 수석 크리에이티브 오피서(CCO)로 카피라이터 출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상품 컨셉부터 비전과 목적 등 경영 컨셉까지 폭넓게 개발해왔다. 아시아 크리에이티브 업계를 대표하는 ’40세 이하의 40인 40UNDER40’과 애드에이지AdAge ‘주목할 만한 세계 크리에이터’ 중 한 명으로 선정되어 국내외적으로 주목받아 왔으며 캠페인지Campaign에서 실시하는 ‘2023 올해의 한일 크리에이티브 리더 어워즈’에서 금상 수상, 국제 광고 페스티벌 칸 라이언즈Cannes Lions 금상을 수상했다.
도대체 컨셉이 무엇인지부터 먼저 짚고 넘어갈까요? 한국에선 흔히 분위기나 상황을 묘사하는 비주얼 개념으로 사용될 때가 많은데요. 그런 이유로 컨셉과 함께 무드보드를 작업할 때도 있고요.
호소다 디렉터에 의하면 컨셉을 만드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의미를 만드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컨셉을 시각 정보에 대해 사용하며 컨셉보드 혹은 컨셉 비주얼을 작업하기도 합니다. 다만 이때 그림으로 표현하기 전에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주얼은 그 의미를 구현한 것이어야 하고요. 예를 들면 코코 샤넬은 ‘여성의 몸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코르셋이 없는 드레스의 스케치를 그렸습니다. ‘의미’를 만드는 것이라는 정의가 조금 모호하게 들릴 수도 있겠죠. 호소다 디렉터가 들어준 예시로 좀 더 살펴볼까요?
✅ ‘제 3의 장소’라는 컨셉으로 가치의 설계도를 그린 스타벅스
여러분께도 친숙한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스타벅스는 ‘이탈리아의 카페 문화를 미국에 가져온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이디어일 뿐, 고객이나 사회에 ‘의미’를 주지는 못했습니다. 지금의 스타벅스를 만든 하워드 슐츠는 사회학에서 ‘제 3의 장소(The Third Place)’라는 말을 발견하고, 이를 스타벅스의 컨셉으로 삼았습니다. ‘왜 세상에 스타벅스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집과 직장 사이에 있어서 편안한 제 3의 장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게 만든 것이죠
스타벅스는 이 컨셉을 마치 설계도처럼 사용하면서 매장 입지 조건, 향기, 조명, 고객 응대, 인테리어 디자인 등 눈에 보이는 모든 요소를 디자인해 나갔습니다. 흡연자가 많았던 1990년대에 금연을 시작한 것도, 스트레스가 많은 오피스 밀집 지역에 집중해서 입점한 것도 모두 ‘제3의 장소’라는 컨셉을 반영한 결과였죠. 컨셉이 되는 말이 있고, 그것이 디자인 등의 시각적 정보나 경험으로 전달된 결과, 스타벅스만의 가치가 고객에게 전달된 것입니다. 이처럼 컨셉이란 ‘가치의 설계도’로서 기능합니다.
이렇게 존재의 의미를 정의내리고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는 부분이 컨셉이 누구에게나 필요한 이유로 와닿네요. 많은 사람들이 컨셉은 ‘표현’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호소다 디렉터는 컨셉을 ‘가치’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진행되는 현재 시점에 기업은 상품 가격이 오르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상품 가치를 올려야 하는 숙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가치는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요?
잠깐 퀴즈! 2000년 이후 양초의 판매량은 증가했을까요? 감소했을까요?
정답은 ‘증가하고 있다’입니다. 사무실, 상업시설, 가정에서도 LED가 사용되는 시대에 신기한 일이죠. 과거 양초라고 불리던 것은 캔들로서 ‘불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어둠을 즐기는 것’ 또는 ‘향을 즐기는 것’으로 애용됩니다. 존재의 ‘의미’를 바꾼 캔들은 300달러가 넘는 것도 있고, 지속성이나 기능성이 좋은 LED보다 더 비싼 것도 존재합니다. ‘이노베이션’이라고 하면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기술의 혁신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가치를 크게 높이기 위해서는 사물의 의미를 변혁하는 ‘의미의 이노베이션’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호소다 디렉터는 일본과 미국에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며 글로벌 기업부터 지역밀착형 중소기업까지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며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솔직히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고 전달할 가치를 찾기 어려운 프로젝트도 많았다고 하는데요. 창조적인 발상은 광고를 만드는 단계보다 더 이전에, 즉 기업이나 상품을 만들 때 더 활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사용자가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바이럴을 이끄는 SNS의 시대에 마케팅에 앞서 더 중요한 단계가 있다는 것이 역설적이기도 하죠? 혹자는 광고비를 두고 ‘기업이 보잘 것 없는 서비스나 제품을 만든 것에 대한 벌금’이라고도 표현합니다. 극단적일 수도 있지만 광고에 앞서 먼저 고민할 것이 있는 것은 분명하죠.
“시대를 바꾸는 발상은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 호소다 다카히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현재의 상식을 부정하고 미래의 가능성을 찾아 지금 만들어야 할 것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그런 컨셉의 발상법을 넓힘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비즈니스맨의 기본 스킬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의미를 제시해 가치를 만든 사례를 몇 가지 살펴볼까요? 잘 만든 컨셉이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살펴보면 여러분에게도 힌트가 될지도?
✅ 쓰레기에게 보물이라는 가치를 부여한 쉘멧
우리 팀이 참여한 사례를 소개해 볼게요. 훗카이도에 가리비 어획량이 일본에서 제일 많은 마을이 있습니다. 전 세계로 수출되는 가리비를 가공하며 남은 가리비 껍데기는 버려지게 되죠. 이를 배로 운반해 폐기하던 업체가 코로나 시기에 도산하면서 이 마을에는 엄청난 양의 가리비 껍데기가 쌓였고, 여기에 미량 함유된 토양 오염 성분으로 환경 문제까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마을을 방문했을때 마을 사람들이 고민하던 것은 ‘어떻게 이 쓰레기를 처리할까?’였죠. 그러나 이 질문의 답은 끝이 없습니다. 우리가 한 것은 ‘쓰레기를 폐기한다’는 발상을 버리고 ‘쓰레기 더미를 어떻게 보물 더미로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바꾸고 아이디어와 힌트가 쏟아져 나오게 한 것이죠. 그 중 우리가 주목한 것은 ‘달걀 껍데기를 플라스틱으로 바꾸는 기술’이었습니다. 달걀 껍데기와 조개 껍데기는 성분이 비슷하기 때문에 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대학의 연구소에서 확인해보니 강도나 유연성 면에서 가리비 껍데기가 우수한 소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활용해 마을의 어부들이 필수로 사용하는 헬멧을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컨셉은 ‘머리와 지구를 지키는 헬멧’, 어부를 보호하며 가리비 어업의 미래를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나아가 네이밍은 조개 껍데기로 만들어진 헬멧에서 착안해 ‘쉘멧(Shellmet)’으로 정했습니다. 쉘멧이 화제가 되면서 플라스틱 사용을 지양하려는 많은 기업과의 협업이 시작됐습니다. 헬멧뿐만 아니라 옷이나 가방의 부품부터 비행기 내 어메니티, 여행용 가방, 놀이기구, 건축자재 등 범위도 다채롭죠.
🙋♀️ 폐기물을 두고 문제 해결을 ‘쓰레기 처리 방법’이 아니라 ‘가치 창출’로 바라보는 관점이 핵심이네요. 호소다 디렉터가 진행한 다른 사례도 살펴볼까요?
✅ 흰색 무지티가 정장이 된다
도쿄의 흰색 무지 티셔츠 전문점 ‘#FFFFFFT’은 오로지 흰색 티셔츠만 파는 작은 가게인데, 지금은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루이비통에서 발행하는 시티 가이드의 쇼핑 지역 1위로 소개되기도 했고요.
이곳의 컨셉은 ‘SHOW YOUR COLOR’입니다. ‘흰색 티셔츠에 색깔?’이라고 의아할 수도 있지만 심플한 티셔츠이기 때문에 오히려 개개인의 개성이 드러납니다. 흰색 티셔츠를 입은 날이 가장 당신다운 날이라는 가치 제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컨셉 역시 흰색 티셔츠는 속에 입는 옷이라는 인식을 ‘흰색 티셔츠야말로 앞으로의 정장이 되어야 한다’로 바꾸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흰 티가 정장으로 인정되면 헬스장에 갔다가 데이트를 하러 가는 상황에서도 티셔츠 위에 입을 옷을 재킷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러워지니까요!
앞서 살펴본 모든 사례들의 공통점은 ‘새로운 의미를 창조’한 컨셉을 만들었다는 것인데요. 훌륭한 컨셉은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질문은 사물을 보는 방식을 규정하기 때문에 어떤 과제가 주어졌을 때, 질문 자체를 의심하고 재구성하는 의식을 가져야 하죠. 재구성 즉 리프레이밍을 하는 방법은 책 <컨셉 수업>에서도 소개되고 있으니 직접 확인하실 수 있게 남겨두고😉 여기서는 ‘막막할 때 가장 빠른 방법’으로 호소다 디렉터가 추천한 방법을 소개합니다.
✅ 단어의 조합 이용하기
미국 광고회사에 다닐 때 존경하는 상사로부터 “컨셉은 영단어 2개까지만 생각해라. 3개를 넣으면 아무것도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0과 같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역사를 바꾼 컨셉은 확실히 영단어 2개, 즉 두 가지 개념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이노베이션은 지금까지 없던 것들의 융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컨셉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까지 없던 것을 만들기 위해 아직까지 없던 단어의 조합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이러한 단어 조합의 대표적인 예시는 ‘퍼스널 컴퓨터’입니다.
한때 컴퓨터가 거대한 장치로 기업에서만 사용되던 시대에 앨런 케이는 컴퓨터를 아이들이 놀듯이 사용하게 만들자고 말하며 ‘퍼스널 컴퓨터’라는 컨셉을 만듭니다. 처음 논문으로 제안된 것이 1972년. 지금이야 당연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그 컨셉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죠. 컴퓨터의 진화는 더 거대해지는 방향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퍼스널’과 ‘컴퓨터’의 조합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고, 이런 새로운 컨셉이 보여준 새로운 미래의 풍경은 스티브 잡스 같은 인재와 함께 결국 시대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컨셉은 인식의 전환과 함께 언어적인 스킬이 필요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실제로 책 <컨셉 수업>에서도 ‘상상을 언어화하는 힘’이 필요하다고도 했고요! 그렇다면 일상에서 이런 힘을 연습할 순 없을까요? 호소다 디렉터가 제안하는 방법은 ‘디컨스트럭션(Deconstruction)’입니다. 한국어로 바꾸면 ‘역기획’ 정도가 될 것 같은데요! 눈앞의 현상을 분석하고 컨셉을 역산해 생각해보는 것이죠.
예를 들면, 유행하는 상업 시설에 가서 그 곳에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를 ‘역기획’으로 먼저 컨셉으로 도출해 보는거예요. 그리고 그 가설 컨셉을 다른 분야, 예를 들어 자동차 회사의 딜러십 컨셉에 적용해 새로운 아이디어의 매장을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거죠. 이러한 방식은 나 자신 또는 젊은 세대를 위한 트레이닝으로도 매우 효과적입니다. 나아가 발견한 것을 여러 명에게 공유하면 더 많은 통찰력을 얻을 수도 있고요! 호소다 디렉터 역시 이런 과정을 거쳐 컨셉의 가설을 바탕으로 전혀 다른 업계, 산업군으로 전환해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일을 자주 한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잡지나 오래된 책의 한 페이지를 노트에 적고, 거기에 나오는 단어를 사용해 컨셉을 생각해보는 방법도 있어요. 평소에 자신이 자주 쓰지 않는 어휘를 사용하면서 새로운 단어의 조합을 만드는 트레이닝이 가능하죠! 컨셉은 처음부터 아름다운 문장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보다 새롭고 지금까지 없었던 단어의 조합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나서 한국어로 좀 더 자연스럽게 전달될 수 있도록 풀어내면 됩니다. 우선은 단어의 발견력이 중요합니다. 문장력이 필요해지는 것은 마무리 단계가 되겠죠.
몇 단어로 표현되는 컨셉을 위해서는 이렇게 새로 재구성하고, 질문 자체를 의심하고, 전환해 생각하는 연습이 필요해요. 컨셉을 만들기 위한 여러분의 고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길 바라며, 호소다 디렉터의 말을 마지막으로 오늘의 컨셉수업을 마칩니다!
“컨셉은 두근거리는 새로운 제안을 위해 만드는 것입니다. 만드는 사람, 즉 창작자가 두근거릴 수 있는 것을 즐겁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 호소다 다카히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해당 아티클은 ‘알에이치코리아’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