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튜브에서 가장 떠오르는 포맷,
단연 팟캐스트가 아닐까요?
한 시간을 훌쩍 넘는 콘텐츠를 지루하지 않게 끌어가려면
말솜씨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 주제에 대한 깊은 애정과 통찰력이 필요하죠.
<이종범의 스토리캠프>의 이종범 작가는
웹툰 <닥터 프로스트>로 이름을 알린 이후
교육자로서 활동하는 등 스토리텔링에 대해 연구해 왔습니다.
지금은 만화, 영화, 애니, 소설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콘텐츠를 큐레이션하는 크리에이터로서 30만 명의 구독자를 모았죠.
장르를 불문하는 콘텐츠 그리고 스토리의 힘.
이종범 작가를 만나 직접 들어보았습니다.
이종범 @storycamper
이종범 작가의 작업실, 2026년 8월 11일
설 說 | 웹툰작가의 ‘스토리’캠프
ㅡ 요즘은 콘텐츠의 종류가 굉장히 광범위한데요. 광고나 숏폼, 영화나 책까지 전부 콘텐츠라고 부르죠. <이종범의 스토리캠프> 채널을 통해 콘텐츠 큐레이션을 하시는 관점에서는 어디까지가 콘텐츠라고 보시나요?

의도를 가지고 만들거나 담아내는 모든 종류의 것을 콘텐츠라고 부를 수 있다고 봅니다. 그 의도가 무엇인지나 만드는 데 품이 얼마나 들어갔는지와는 상관 없이요. 마치 패스트푸드와 파인 다이닝이 모두 같은 ‘요리’인 것처럼, 지금의 콘텐츠는 너무 광범위한 개념이 된 것 같거든요.
예를 들어 당근이라는 식재료가 있을 때 보통은 그걸 손질해서 끓이거나 굽거나 해야 요리라고 해요. 그런데 파인 다이닝 셰프가 어떤 의도를 담아 칼질을 하면 그건 요리라고 부르잖아요. 이런 식으로 어떤 기준에 따라 정성적 평가는 가능하겠지만, 가공에 품이 덜 들어 날것에 가깝다거나 하는 이유로 콘텐츠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ㅡ 콘텐츠 시장에서 창작자로서 직접 겪은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요? 사실 웹툰 작가로 데뷔하셨던 때, 그리고 크리에이터로 활동하시는 지금을 비교하면 시장 자체가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요.

저는 아이폰이 공개되고 유튜브가 막 만들어지던 시절에 데뷔했어요. (웃음) 그래서 정말 많은 변화를 마주할 수밖에 없었죠. 변한 게 워낙 많아서 뭘 먼저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변한 건 ‘게이트키퍼’의 존재 같아요.
그때만 해도 누군가가 창작자가 되려면 우선 자신의 창작물을 검증받아야만 했어요. 소설가가 되려면 신춘문예에 응모해서 당선이 되어야만 문단에 등단할 수 있었던 것처럼요. 그런데 지금은 뭐든 일단 만들어서 업로드 버튼만 누르면 되죠. 말하자면 검증 주체가 특정 인물이나 단체가 아닌 시장으로 넘어간 거예요. 창작자로서 인정받기 위해 기본기나 작품성 같은 정통적인 평가 지표보다도 ‘시장에서 팔리는’ 걸 만들어내는 역량이 더 중요해졌다고 볼 수 있겠죠.
ㅡ 사실 시장에서 팔리는 콘텐츠의 요건도 천차만별인데요. 웹툰으로 치면 작화나 캐릭터 설정 같은 요소들도 있을 텐데, 작가님은 유튜브 채널명에서부터 스토리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시죠. 그 이유는 뭘까요?
시대의 변화든 독자들의 변화든, 속도가 워낙 빠르니까 콘텐츠의 많은 요소들이 계속 변해요. 그런데 이걸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변하지 않는 원칙이 무엇인지를 보거든요. 그게 이야기, 정확히 말하자면 이야기라는 형식이 가지고 있는 힘이에요. 길이가 짧은 숏폼이라고 해서 이야기의 힘이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형태가 바뀌었을 뿐이죠.
저도 웹툰 작가로 시작해서 교수, 크리에이터까지 다양한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일들이 각각 분리되어있지는 않아요. 모든 일에 제가 생각하는 스토리의 원칙이 적용될 수 있으니까요.
명 明 | 취향의 해상도를 높이는 언어
ㅡ 유튜브에서 매번 다른 콘텐츠들을 소개하고 계시는데, 작가님 본인이 요즘 빠져계신 콘텐츠가 따로 있다면요?

저는 덕질할 준비가 언제나 돼 있는데, 요즘은 뜨개질도 덕질하기 참 좋은 분야더라고요. 뜨개질을 즐기시는 분들끼리 커뮤니티가 굉장히 활발해요. 그러면서 커뮤니티라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 보게 됐어요. 요즘은 길에서 누가 말을 걸면 무섭다고 느끼기 급급한 세상이잖아요. 이럴수록 건강한 커뮤니티가 회복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은데, 뜨개질 커뮤니티에 갔을 때 그런 파라다이스를 경험했어요.
이런 교류 문화를 게임 콘텐츠에서도 경험해 보고 있는데요. 원래는 저 혼자서 스토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즐기는 콘솔 게임 위주로 했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는 온라인 게임도 새롭게 해보고 있어요. 스토리 게임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저마다 내 편을 만들거나 배신하는 과정, 혹은 외부의 적을 대하는 방식 같은 게 중요하잖아요. 여기에서 그 세계만의 소통 문화를 알아볼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더라고요.
ㅡ 방금 말씀하시는 내내 뜨개질이나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를 이렇게 명확하게 설명하실 수 있는 게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라면 ‘재밌다’ 이상의 이유를 들지 못할 것 같거든요.
최근에 제가 하는 일들이 딱 그런 거예요. 좋아하는 이유에 대한 어휘를 찾아주는 거죠. 무엇 때문에 내가 행복했는지를 알아야만 비슷한 걸 찾을 수 있어요.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것들을 많이 찾기 위해서는 언어가 꼭 필요하고, 언어를 가질수록 행복해져요.
ㅡ 그런 언어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흔히 천재는 가르치는 걸 잘 못한다고들 하잖아요. 무언가를 어려워해 본 경험이 없어서, 어떤 사람이 질문을 했을 때 그 의도를 이해하기보다는 “이걸 왜 못하지?”가 된다고요. 경험이 많을수록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더 잘 보이기 마련이죠.
비슷한 맥락으로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 우선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면밀히 들여다봐야 해요. 쉽게 말하면 특정 콘텐츠에 마음을 빼앗긴 순간이 언제였는지를 되짚어 보는 거죠. 이 캐릭터의 어떤 점이 좋았다, 이런 전개가 재밌었다, 이런 것들을 하나씩 쌓다 보면 공통점이 보여요. 물론 이때 전제조건은 우선 다양한 콘텐츠를 많이 즐겨보는 것이겠죠? 경험이 없는데 취향이 생길 수는 없으니까요.
회 會 | 사람을 모으는 몰입의 힘
ㅡ 실제로 그 언어를 찾기 위해 <이종범의 스토리캠프>를 즐겨보시는 시청자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채널 구독자가 30만 명을 돌파했는데, 사람들이 작가님의 콘텐츠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문화 영역에서 큐레이팅을 선호하는 분들은 보통 그 채널에 대한 신뢰가 쌓여서 계속 소비하시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이 채널에서 추천한 콘텐츠를 봤더니 재밌더라 하는 경험들이 신뢰가 되고, 믿을 수 있는 채널에서 추천하는 콘텐츠를 또 보게 되는 거죠. 마치 콘텐츠계의 결혼정보회사 같은 느낌이랄까요.
ㅡ 광고를 만드는 마케터들도 매일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텔링을 고민하는데요. 스토리텔러로서의 마케터에게 조언해 주신다면요?
‘어떤 인간을 보고 싶어 할까’에 대한 고민이 첫 번째인 것 같아요. 그 시대가 원하는 인간상은 시대마다 계속 변하잖아요. 요즘은 주변의 압박에 초연하고 자기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는 사람에게 많이들 매력을 느끼시는 것 같고요. 그런 대중이 바라는 인간상을 구체화해 보세요. 결국 어떤 콘텐츠에서든 시청자에게 중심이 되는 페르소나를 각인시켜 주는 게 도움이 돼요.
넷플릭스를 볼 때도 주인공이 누군지 인지가 되고 정이 가야 스토리에 집중하게 되잖아요. 꼭 콘텐츠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소개팅이나 면접, 커피챗처럼 처음 보는 사람과 만날 때 나라는 인물이 누구인지를 매력적으로 인지시키는 게 중요하고요. 변치 않는 스토리의 법칙을 잘 응용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Editor’s Comment
여러 콘텐츠를 편식 없이 감상하는 경험이 좋다는 건 알지만, 알고리즘에 갇혀 늘 보던 것과 비슷한 콘텐츠만 보게 되죠. 어떤 작품이 재미있을지를 고르는 것조차 쉽지 않고요.
그런 분들을 위해 이종범 작가님의 추천 작품을 공유합니다. 시간을 내어 새로운 영역을 탐색하다 보면 나조차 몰랐던 내 취향을 알게 되고, 스토리를 바라보는 시야도 더 넓어질 거예요.
✒️ 웹소설 <즉사기 들고 무림에 떨어지다>
무협은 장르 고유의 문법이 굳어진 편이라 신규 독자의 진입이 어려운 장르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무협 세계에서의 현상들을 현대 과학으로 설명하며 진입 장벽을 낮췄어요. 무협이 궁금하셨다면 이 소설로 입문해보시길 추천합니다.
📺 유튜브 latentdiffusion <craft (1979)> 시리즈
게임 <마인크래프트>를 AI로 실사화한 유튜브 시리즈입니다. 원작 게임의 팬들이 극찬할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해요.
🖼️ 웹툰 <품위증명>
도파민 중심의 웹툰 시장에서 ‘웹툰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지금까지 웹툰에서 보기 어려웠던 서사의 깊이와 문학성을 즐겨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