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브랜드는 스테디(steady)를 넘어 스탠다드(standard)가 됩니다.
꾸준히 팔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들의 일상에 깊이 스며들어
하나의 대명사처럼 여겨질 정도로 통용되는 기준이 되는 거죠.
“얼마나 매워요?”라는 질문에 “신라면 정도요”라고 답하는 것처럼요.
국내 소비자들에게 명실상부 스탠다드로 자리 잡은 신라면은
이제 글로벌 소비자들의 일상을 겨냥합니다.
신라면을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해외 소비자들과
처음부터 안면을 트는 과정은 국내 시장과 전혀 다를 수밖에 없을 거예요.
익숙함을 무기로 삼을 수 없는 시장에서 브랜드 경험을 처음부터 설계하는 일.
농심은 지금 그 과제를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
디지털마케팅팀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농심 디지털마케팅팀 Nongshim
이병찬 책임
김수정 선임
서울 동작구 농심 본사, 2026년 3월 5일
국민 브랜드에서 글로벌 브랜드로
ㅡ 글로벌 시장에서 농심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죠. 그 과정에서 디지털마케팅팀은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요?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제품 출시나 유통망 확장도 중요하지만, 국경 없이 전 세계 소비자를 만날 수 있는 채널로써 디지털 미디어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어요. 그 접점을 전담하기 위해 2년 전에 만들어진 조직이 디지털마케팅팀이에요.
단순히 소셜미디어를 운영하는 게 아니라, 온오프라인을 연계해서 글로벌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ㅡ 글로벌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은 국내보다 타깃이 훨씬 광범위할 텐데요. 그만큼 일하는 방식이나 캠페인에 대한 관점도 많이 다를 것 같아요.
몇 년 전만 해도 새로운 기획을 짜면서 하는 첫 질문의 중심에는 항상 매출이 있었어요. 마케팅은 수치로만 표현되기 어려운 영역이지만 ROI처럼 숫자로 된 성과가 가이드라인이 되다 보니, 캠페인도 안정 지향적으로 갈 수밖에 없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매출보다도 ‘가치’를 먼저 생각합니다. 소비자들에게 가치 있는 경험을 전달하는 게 우선순위인 거죠. 숫자에 얽매이지 않고 현장에서 직접 소비자들의 반응을 피부로 접할 수 있는 일을 하다 보니 구성원들이 일에 보람과 재미를 느끼게 된 것도 큰 변화예요. 자연스럽게 모두가 굉장히 역동적으로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분위기가 되었고요.
ㅡ 심지어 전 세계에서 K-컬처에 대한 주목도가 놀라울 정도로 높아지던 시기이기도 했잖아요.

시대 자체가 국내 시장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해외 시장을 함께 고려할 수밖에 없는 흐름을 맞이했다고 봅니다. K-컬처의 확산이 몇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고, 그 흐름 안에서 자연스럽게 글로벌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혀가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됐죠.
최근에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결정적인 모멘텀이 되었어요. 2025년 6월 넷플릭스에 공개된 직후, 주인공인 헌트릭스 캐릭터들이 컵라면을 먹는 장면을 본 시청자들이 “저 장면에 나오는 게 신라면 아니야?”라는 반응을 쏟아냈거든요.
소비자와 만나는 접점을 더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직접 실감한 순간이었어요. 해외 소비자들이 우리 제품을 경험하는 게 전부가 아니더라고요. 마케팅에 대한 관점도 한국 문화를 경험하고, 한국인처럼 라면을 즐기는 문화를 만드는 방향으로 더 넓어졌어요.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의 콜라보레이션 제품도 그렇게 탄생하게 됐죠.
낯선 소비자에게 첫인상을 만드는 법
ㅡ 그 이후로는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있나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콜라보레이션 제품이 출시된 이후 2025년 10월에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디지털 옥외광고와 신라면 체험 부스를 운영했어요. 그 이후로는 무대를 더 적극적으로 넓혀 세계 3대 겨울 축제인 중국 하얼빈 빙등제, 캐나다 퀘벡 윈터 카니발, 일본 삿포로 눈 축제에도 나갔어요.
이처럼 글로벌 소비자들이 오프라인에서 직접 제품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해서 만들고 있죠. 그 나라에서 상징적인 장소에서 이벤트를 진행해 많은 트래픽을 확보하고, 동시에 디지털 콘텐츠로 풀어내서 온라인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끔요.
ㅡ 다시 말해 한 번의 이벤트로 폭발적인 파급효과가 이어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네요?
맞아요. 그래서 현장의 부스나 체험 요소들이 콘텐츠와 연계되어 소셜에서 바이럴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내고 있어요. 이벤트가 다 끝나고 난 뒤에야 ‘그런 걸 했다더라’ 하는 게 아니라, 지금 이루어지는 이벤트를 시의성 있게 전달하는 방식을 고민했죠.

고민의 결과가 가장 잘 드러난 게 올해 1월에 참가한 하얼빈 빙등제였어요. 빙등제에는 높이 8m 크기의 거대한 신라면 얼음 성을 설치했는데요. 그 압도적인 규모감이 화면 안에서도 느껴질 수 있을 만큼 현장을 생동감 있게 담아내고자 드론을 띄우기도 했어요.
그런데 당시 하얼빈은 기온이 영하 40도에 달하는 한파였어요. 이런 날씨에 드론이 작동하겠냐는 우려 섞인 반대도 있었는데, 콘텐츠에 꼭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어떻게든 해보고자 했죠. 그래서 어렵게 드론을 띄워 기획했던 비주얼을 효과적으로 잘 전달할 수 있었어요. 결과적으로 하얼빈에서 촬영한 영상의 조회수는 총 1,850만 회가 나왔고, 내부에서 “앞으로 글로벌 캠페인은 하얼빈처럼 하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성공적이어서 뿌듯했죠.
ㅡ 하지만 모든 캠페인이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가장 예상 밖이었던 순간이 있다면요?

작년 10월, 뉴욕 타임스퀘어에 갔을 때요. 당일 타임스퀘어에서 대규모 시민 집회가 열려 수백만 명의 인파가 광장에 쏟아졌거든요. 사전에 뉴욕시에서 전달받은 규모는 훨씬 작았었는데, 아침에 부스를 설치하고 있을 때 앞에 몇몇 사람들이 모여 있더라고요. 그런데 인원수가 점점 불어나더니 나중엔 끝도 보이지 않는 군중이 되어버렸어요. 평생 그렇게 많은 인파를 본 적이 없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사고가 나는 게 아닌가 싶어 긴장이 되었는데요. 막상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다소 어색한 듯한 발음으로 ‘농심 신라면’이라는 이름을 읽고, 신라면 툼바를 시식한 후에 엄지를 올려주는 걸 보면서 정말 뿌듯했어요. 처음엔 걱정도 되고 무섭기도 했지만, 행사가 끝나고 나니 가장 인상 깊고 재미있는 경험이 됐죠.
ㅡ 미국에서는 타임스퀘어뿐만 아니라 심야 토크쇼 〈지미 키멜 라이브(Jimmy Kimmel Live)〉에도 등장했다고요.

하얼빈 빙등제와 뉴욕 타임스퀘어가 소비자를 직접 찾아가는 방식이었다면, 미국 NBC의 대표 심야 토크쇼 〈지미 키멜 라이브〉는 그들이 이미 신뢰하는 영역으로 들어가기 위해 택한 채널이었어요. 글로벌 소비자들이 대중적으로 소비하는 프로그램에 신라면이 자연스럽게 등장했을 때 본격적으로 주류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주류가 된다는 건 그냥 인지도만 높은 게 아니거든요. 외국 소비자들이 밤에 심야 토크쇼를 보다가 신라면을 보고 바로 라면을 끓이러 간다고 생각하면 재미있지 않나요? 마치 한국인들이 야식으로 라면을 먹고 싶어 하는 것처럼요. 이렇게 한국에서 일상처럼 자리 잡은 소비 방식이 글로벌 소비자들에게도 일상이 되게끔 만들고 싶었어요.
신라면, 전 세계인의 일상이 될 때까지
ㅡ 이처럼 해외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때 가장 주요했던 요소는 무엇이었나요?

글로벌 소비자들의 컨텍스트(context)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녹아드느냐가 핵심이에요. 그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과 문화를 충분히 해석하는 거죠.
해외 타깃 콘텐츠에 한국 소비자들이 한글로 반응해 주는 것도 감사하고 반갑지만, 미국·영국·동남아·호주 소비자들이 그들의 언어로 달아주는 댓글을 면밀히 살펴요. 지미 키멜 라이브 유튜브에 달린 “이거 기획한 사람 누구야?”라는 댓글. 뉴욕 타임스퀘어 영상을 자발적으로 편집해 확산한 인스타그램 릴스들. 이런 반응들이 숫자보다 더 많은 걸 말해준다고 느꼈어요.
사실 아직은 농심이라는 이름을 더 널리 알려가는 빌드업 단계에 있다고 생각해요. 여러 접점들이 차곡차곡 쌓인 후에 조회수나 도달 같은 정략적인 기준치도 잡아가려고 합니다.
ㅡ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목표나 다음에 가장 도전해 보고 싶은 시장이 있다면 어디인가요?

지금까지 여러 나라를 다녀보면서 느낀 건, 한국의 매운맛에 대한 거부감이 생각보다 훨씬 적다는 거예요. 오히려 처음 접하는 매운맛이 새롭고 맛있다고 즐기는 반응이 많았거든요. 한국의 매운맛이 글로벌 스탠다드가 될 수 있다는 걸 더 많은 나라에서 증명해 보고 싶습니다.
특히 유럽, 그중 프랑스 시장에도 도전해 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작년에 파리에 갔을 때 현지 시장에서 신라면을 쉽게 만날 수 없었던 게 아쉬웠거든요. 미식 문화가 워낙 발달한 곳인 만큼 그곳의 소비자들이 한국의 라면 문화를 접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기회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 Editor’s Comment
마케팅, 특히 콘텐츠는 확신을 갖기 쉬운 일이 아니죠. 기업의 매출이나 성과에 직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숫자로 증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농심에서는 자신의 일에 대한 강한 확신이 느껴졌어요. 그 이유는 ‘신라면이 글로벌 소비자에게 스탠다드가 되는 것’이라는 목표가 명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을 해나가는 데 추진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면, 지금 하는 일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를 다시 점검할 때일지도 몰라요. ‘글로벌 스탠다드’처럼 흔들리지 않을 만큼 명확한 언어로 정의해보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