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리브랜딩’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아마 적지 않은 분들이 로고 디자인 리뉴얼과 같은 요소를 먼저 떠올릴 거예요. 하지만 그건 리브랜딩 과정에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죠. 브랜드가 리브랜딩 하는 이유도, 실행하는 방법도 저마다 다르니까요. 무엇보다 소비자에게 브랜드가 변화를 택한 배경과 의도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득하고, 이후 모든 접점에서 일관되게 경험하도록 커뮤니케이션하는 과정을 거쳐야 성공적으로 리브랜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대표적인 리브랜딩 사례들을 살펴보며, 그 방법에 대해 알아봤어요.
곰표 🐻
대한제분 산하의 제분 브랜드 ‘곰표’는 한때 젊은 세대에게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클래식한 이미지의 브랜드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MZ세대에게 ‘뉴트로 감성’의 아이콘으로 잡으며 완전히 다른 브랜드로 재인식되고 있습니다. 과연 어떤 변화가 곰표를 이렇게 바꾸어 놓았을까요?

변화의 시작은 2019년 패션 브랜드 ‘4XR’과의 협업이었습니다. 밀가루 포대를 연상시키는 곰표 패딩과 티셔츠는 다소 촌스럽고 투박한 디자인이었지만 오히려 MZ세대에게는 “레트로하고 귀엽다”, “감성 있다”는 반응을 이끌어내며 SNS에서 빠르게 입소문을 탔죠. 예상치 못한 반전 매력이 화제가 되며 곰표는 단숨에 ‘힙스터 브랜드’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뒤이어 2020년 5월 곰표는 수제 맥주 브랜드 ‘세븐브로이’와 함께 ‘곰표 밀맥주’를 출시합니다. 브랜드 정체성과도 맞아떨어지는 ‘밀맥주’ 콘셉트, 당시 높아진 수제 맥주 수요, 그리고 곰표 특유의 뉴트로 감성이 어우러지며 MZ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죠. 이 제품은 출시 후 약 3년간 6,000만 캔 이상이 판매되는 성과를 거두며 곰표 리브랜딩의 대표 성공 사례로 자리 잡았습니다.
‘곰표 팝콘’ 역시 빼놓을 수 없어요. 곰표는 CGV와의 협업에서 곰표의 상징적인 20kg 밀가루 포대 디자인의 패키지로 팝콘을 출시했는데요. 이 사례는 ‘가잼비(가격 대비 재미)’를 중시하는 MZ세대의 소비 트렌드에 착 달라붙었고, 자연스럽게 SNS에서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처럼 곰표의 리브랜딩은 단순한 로고 변경이나 디자인 세련화가 아니라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위트 있게 재해석한 데서 출발했어요. 의류, 맥주, 팝콘 등 전혀 다른 카테고리로의 확장과 파격적인 협업을 통해 촌스러움을 힙하게 뒤집었죠. 이 모든 과정에서 곰표 특유의 감성과 재치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며, 젊은 세대에게 확실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모나미 🖋
‘국민 볼펜’으로 불리는 모나미는 오랫동안 저렴하고 실용적인 문구 브랜드로 사랑받아 왔지만, 한편으론 평범하고 밋밋하다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특히 특별한 브랜드 경험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에게는 매력적인 브랜드로 다가가기 어려웠죠. 이에 모나미는 브랜드의 본질을 재정의하고, 보다 감각적인 브랜드로 탈바꿈하는 리브랜딩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합니다.

리브랜딩의 중심에는 역시 브랜드를 대표하는 ‘153 볼펜’이 있었습니다. 153 볼펜의 하얀 육각 바디와 검정색 펜촉이라는 상징적인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도 소재와 품질을 고급화하여 소장 및 선물 가치를 지닌 프리미엄 제품군을 개발하는 데 주력했어요. 대표적으로 2014년 선보인 ‘모나미 153 리미티드 1.0 블랙’은 기존의 300원짜리 볼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고급스러운 인상을 주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후 ‘153 ID 만년필’, ‘153 리스펙트 리파인’, ‘153 네오 만년필 EF’ 등 다양한 고급 펜 라인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며 모나미의 새로운 입지를 다져갔죠.

이후 ‘153 DIY 키트’를 출시하며 브랜드 경험을 확장했어요. 바디 컬러, 잉크 색상, 펜촉 등을 직접 선택해 나만의 볼펜을 만드는 방식은 디자인과 개성을 중시하는 MZ세대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죠. 특히 성수동 콘셉트 스토어에서는 DIY 공간을 함께 마련해, 브랜드를 ‘사용하는 제품’에서 ‘경험하는 공간’으로 확장시키는 시도를 선보였습니다.
모나미의 리브랜딩은 문구 자체를 넘어 패션의 영역까지 확장됩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모나미룩’이에요. 모나미룩은 하얀 바디에 검은 펜촉을 지닌 153 볼펜에서 착안해, 흰 셔츠에 검은 하의를 매치한 미니멀한 스타일을 지칭하는 용어인데요. 모나미는 이 흐름을 재치 있게 수용하여 한국의 대표 디자이너 이상봉과 ‘모나미X이상봉’ 컬렉션을 선보였어요. 이 협업은 문구 브랜드의 경계를 넘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도약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모나미는 브랜드의 대표 아이콘인 ‘153 볼펜’을 단순한 필기구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디자인과 경험, 패션까지 연결되는 상징으로 확장해냈습니다. 변하지 않은 본질 위에 감각적인 해석을 더하며 브랜드의 정체성과 가능성을 다시 이야기한 셈이죠. 그 결과 지금도 여전히 펜을 만드는 브랜드이지만, 그 펜이 가진 의미와 경험은 이전과는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시몬스 🛏
시몬스는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라는 슬로건으로 오랫동안 신뢰를 받아온 전통 침대 브랜드예요. 한때는 30대 이상 소비자에게 익숙한 혼수 가구 브랜드 이미지가 강했지만, 시몬스는 과감한 리브랜딩 전략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도 친숙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탈바꿈했습니다. 그리고 그 핵심은 제품이 아닌 경험 중심의 전략 전환이었어요.
대표적인 시도가 바로 ‘침대 없는 팝업스토어’입니다. 서울 성수, 청담, 부산 해운대 등 트렌디한 지역에 문을 연 이 팝업들은 침대를 전시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철물점을 콘셉트로 한 ‘시몬스 하드웨어 스토어’에서는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공구, 문구류, 패션 아이템 등의 굿즈를 판매했고, 이국적인 마트 분위기를 구현한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에서는 로컬 특산물과 협업 F&B 상품을 선보였어요. ‘침대 브랜드에 침대가 없다’는 역설적인 설정만으로도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방문자들은 시몬스만의 취향과 철학이 담긴 복합문화 공간을 경험하게 되었죠.
시몬스의 창의적인 시도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MZ세대가 선호하는 감각적인 콘텐츠 제작에도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특히 2022년에 공개된 ‘오들리 새티스파잉(Oddly Satisfying)’ 캠페인은 시몬스가 추구하는 ‘편안함’을 제품 없이 전달한 사례예요. 반복적인 움직임, 고요한 질감, 몽환적인 음악이 어우러진 영상은 ASMR처럼 무의식적인 몰입감을 자극하며 시청만으로도 안정을 느끼게 했죠. 해당 콘텐츠는 공개 한 달 만에 유튜브 누적 조회 수 2,000만 회를 돌파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시몬스는 역설적으로 주력 제품을 제외한 채 브랜드의 가치를 이야기하며, 리브랜딩이 단순한 이미지 개선이 아니라 새로운 브랜드 경험을 설계하는 과정임을 보여줬어요. 브랜드의 본질은 유지한 채, 표현 방식을 감각적으로 재구성한 덕분에 새로운 타깃과의 연결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죠. 새로운 타깃을 노리고 있다면 시몬스의 방식을 참고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피자헛 🍕
피자헛 코리아는 올해 한국 진출 4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리브랜딩 프로젝트 ‘1985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특히 Z세대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해, 뻔한 제품 광고 형식을 벗어나 스토리텔링과 레트로 감성을 결합한 영리한 접근 방식을 보여줬어요.
피자헛이 리브랜딩을 위해 주목한 것은 다름 아닌 브랜드의 헤리티지였습니다. 이를 위해 피자헛은 ‘피자훈’이라는 가상의 페르소나를 만들어냈는데요. 1985년 피자헛 코리아 입사자이자 홍보 담당자라는 설정의 이 캐릭터는 80년대 특유의 말투와 정서를 생생하게 재현하며 브랜드의 역사를 유쾌하게 풀어냈습니다. 서울의 옛 풍경, 아침 체조, 88올림픽, 불고기 피자 출시 등 피자헛의 주요 순간들을 피자훈의 시점에서 보여주었죠.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 없이도, 브랜드가 걸어온 시간과 아이덴티티를 자연스럽게 각인시킨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피자훈의 역할은 ‘용원게이’ 밈으로 유명한 배우 장용원이 맡아 자연스럽게 Z세대의 관심을 끌어냈고요.
사실 피자헛은 이전에도 레트로 마케팅을 활용한 전례가 있습니다. 바로 ‘피자헛 이즈백’ 캠페인이었는데요. 유튜브 ‘피식대학’의 세계관과 연계해 05학번 부캐 ‘정재혁’을 모델로 앞세운 이 캠페인은 2000년대 학창시절의 문화와 감성을 소환하며, 피자헛이 그 시절의 브랜드라는 인식을 재점화했어요. 브랜드를 새롭게 포장하기보다 과거를 함께 공유한 소비자와 정서적으로 접점을 만든 방식이었습니다.
이처럼 피자헛은 ‘올드하다’는 이미지를 숨기거나 지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를 정면으로 활용해 브랜드 정체성을 강화하고 세대 간의 감정적 연결을 만들어냈죠. 단순히 브랜드를 젊어 보이게 하는 것이 리브랜딩의 본질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사례였어요.
진로 🍶
리브랜딩 과정에서 ‘뉴트로’ 전략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브랜드를 하나 더 살펴볼까요? 바로 소주 업계에서 성공적인 리브랜딩을 이뤄낸 ‘진로’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참이슬’이 주력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었지만 소주 시장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해졌고, 이에 따라 하이트진로는 과거의 브랜드 ‘진로’를 부활시키는 전략을 택했는데요. 이렇게 탄생한 슬로건이 바로 ‘진로 이즈 백’입니다.
진로는 기존 소주 브랜드들이 대부분 선택한 초록색 병에서 과감히 벗어나, 1970~1980년대 진로의 상징이었던 하늘색 투명 병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어요. 여기에 복고풍의 한자 로고와 ‘두꺼비’ 캐릭터까지 되살리며 중장년층에게는 향수를, MZ세대에게는 뉴트로 감성을 선사했죠. 전통적인 자산을 활용하면서도 시대에 맞는 감각으로 풀어낸 디자인이 기존 브랜드들과의 확연한 차별점을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진로는 그중에서도 두꺼비 캐릭터를 핵심 마스코트로 재정비하며 팬덤 구축에 힘을 실었습니다. 주류 업계 최초로 ‘두껍상회’ 팝업스토어를 전국 각지에서 운영하며 단순 굿즈 판매가 아닌 체험형 콘텐츠를 강화했는데요. 초대형 소주병 모형, 게임기, 포토존, 굿즈 등 다양한 요소를 배치해 MZ세대에게는 SNS 인증 욕구를 자극하는 놀거리를 제공했고, 이는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후 두꺼비 캐릭터는 소주잔·슬리퍼·폰케이스·피규어 등 다양한 굿즈로 확장되며 하나의 브랜드 IP로 자리 잡았습니다. 또한 커버낫, 미샤 등 이종 산업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진로이즈백 자체를 독립적인 브랜드처럼 키우는 데 성공했어요. 이러한 전방위적인 활동은 폭발적인 성과로 이어져, 출시 1년 만에 1억 병 판매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답니다.
그렇다면 진로이즈백 리브랜딩에서 주목할 지점은 무엇일까요? 앞선 피자헛처럼 뉴트로를 영리하게 활용했다는 점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기존 브랜드에서 파생된 브랜드를 투트랙으로 운영하며 리브랜딩을 완성한 방식입니다. ‘참이슬’이라는 기존 브랜드를 유지한 채, ‘진로이즈백’을 별도로 성장시키면서 브랜드 포트폴리오 전반에 새로운 활력을 준 셈이죠. 이는 소비자의 브랜드 인식을 다층적으로 확장하는 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어요.
NOL(야놀자) ✈
야놀자와 인터파크트리플의 통합으로 탄생한 놀유니버스가 ‘NOL’이라는 새로운 브랜드로 거듭났다는 사실, 알고 계시죠? 기존 ‘야놀자 플랫폼’은 ‘NOL’, ‘인터파크투어’는 ‘NOL 인터파크투어’, ‘인터파크 티켓’은 ‘NOL 티켓’으로 각각 브랜드를 재정비했는데요. 한편 여행, 레저, 문화 전반을 하나의 브랜드 아래 통합함에 따라 새로운 정체성과 경험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인 리브랜딩 시도 중 하나는 앱 아이콘에 숨겨진 이스터에그 설계였어요. 앱을 업데이트하면 기존 야놀자의 핑크색 앱 아이콘 뒤로 ‘NOL’의 브랜드 컬러인 블루가 살짝 드러나도록 디자인된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요. 마치 한 꺼풀 벗겨지듯 변화하는 모습으로, 기존 브랜드 인지도를 자연스럽게 이어가면서도 새로운 브랜드 전환을 직관적으로 암시한 거예요. 그 결과 낯선 변화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호기심과 기대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럼 리브랜딩 후 캠페인은 어땠을까요? NOL의 첫 통합 캠페인인 ‘나의 세계를 놀랍게’는 기존 여행 플랫폼 광고들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유명 모델도, 브랜드 로고를 반복하는 장면도, 앱 이용 장면도 등장하지 않아요. 대신 “나의 세계를 놀랍게”라는 슬로건을 통해 브랜드 중심이 아닌 고객 중심의 서사를 강조했습니다. 고객이 NOL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경험하게 될 가치를 은유적으로 전달한 셈이에요.
NOL은 이후에도 ‘놀라움’이라는 키워드를 다채로운 방식으로 확장했어요. ‘나의 세계를 놀랍게’라는 슬로건 아래, 반려동물이 주는 일상의 놀라움을 공유하는 SNS 챌린지, 기억에 남는 공연과 무대를 공유하는 ‘명장면 콘테스트’ 등을 진행했죠. 단순 이벤트가 아닌 사용자 일상 속에서 브랜드 가치를 함께 완성해 나가는 접근이었습니다.
이처럼 NOL의 리브랜딩은 그저 로고 변경에서 그치지 않고 브랜드의 철학과 경험을 통합적으로 재정의 했습니다. 강력한 원 브랜드(야놀자)를 보유한 상황에서 기존 정체성을 지우기보다는 연결성과 확장성이라는 가치로 자연스럽게 진화한 방식이라 볼 수 있어요. 익숙함에서 기대감을 이끌어내는 것 또한, 충분히 리브랜딩 전략의 일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리브랜딩은 단지 젊어 보이기 위한 시도가 아닙니다. 과거를 지우기보단 현재의 맥락 속에서 브랜드의 본질을 다시 말하는 작업에 가깝죠. 누군가는 과거의 유산을 끌어와 새롭게 조명했고, 누군가는 브랜드의 핵심을 다시 정의하며 지금의 감각에 맞는 옷을 입혔습니다. 즉, 중요한 건 브랜드가 지금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는 거예요. 리브랜딩을 고민하고 있다면, 우리 브랜드가 지금 누구와 어떻게 연결되길 원하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세요.
*외부 필진이 기고한 아티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