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도, 도파민도 흘러넘치는 지금! 스크롤을 내리기만 해도 수십 개의 콘텐츠가 쏟아져나오고 브랜드들은 더 강한 메시지, 더 잦은 빈도로 존재감을 증명하려 하죠. 연애 프로그램(이하 연프)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환승 서사, 사내 연프, 퀴어 연프, 가족 개입형 연프, 시니어 연프까지… 새로운 연애 포맷이 끝없이 등장하죠. 소재와 형식은 계속 새로워지지만 반응은 엇갈립니다. ‘이제 연애 프로그램이 피곤하다’, ‘자극만 남고 진정성은 사라졌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여기, 이 과잉의 흐름을 역행하여 최근 연프 마니아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프로그램이 하나 있습니다.
❤️ 자극을 덜어낸 연프, 72시간 소개팅
바로 유튜브 채널 때때때 TTT의 72시간 소개팅인데요. 처음 만난 남녀가 타국의 여행지에서 단 3일, 72시간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알아가는 연애 다큐 리얼리티랍니다. 유병재의 매니저로 얼굴를 알렸던 유규선 블랙페이퍼 대표가 기획하고, 감각적인 영상미로 유명한 ‘원의 독백’ 임승원 감독이 연출을 맡았죠.

첫 에피소드였던 후쿠오카 편은 1·2부 합산 120만 뷰를 넘겼고, 현커 탄생으로 화제가 된 삿포로 편은 1부 181만 뷰, 2부 120만 뷰를 기록하며 단숨에 연프계의 루키로 떠올랐어요! 화려한 설정도, 과한 장치도 없는데 오히려 ‘요즘 보기 드문 연프’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온라인상에서 화제를 모은 이 콘텐츠는 지난해 12월 14일,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디에디트가 처음 개최한 영화제 ‘제1회 디에이트 영화제’ 라인업으로 공개돼 실제 상영으로 이어졌는데요. 이는 모바일 환경에서 가볍게 소비되던 유튜브 콘텐츠가 시간을 내어 오프라인 공간에서 끝까지 관람하는 방식으로 소비 맥락이 확장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72시간 소개팅이 해당 영화제 라인업 가운데 상영관 전 좌석이 1초 만에 매진된 유일한 작품이었다는 점은 온라인에서의 관심이 조회에 그치지 않고 실제 관람으로까지 이어졌음을 잘 보여주죠.
최근에는 종영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기에 힘입어 후속편 제작까지 확정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는데요.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부분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요?
☑️ 72시간 소개팅이 성공한 이유, ‘튜닝의 끝은 순정’
72시간 소개팅은 보통의 연프 공식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감칠맛을 더해주는 패널도, 도파민 터지는 다각 관계 구도도, 호화로운 공간도, 자극적인 편집도 없죠. 대신 72시간 동안 함께 여행하며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의 모습만이 담깁니다. 그것도 1시간 남짓한 롱폼으로요! 자짓하면 지루하게 느껴지는 조건들이지만 오히려 이 미니멀한 구성이 성공의 열쇠였습니다.

절제된 구성은 시청자를 두 사람의 여행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오로지 두 사람만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함께 여행 온 동행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들어요. 비행기 안 소음, 식당 안팎의 부산스러움, 현지인들의 언어가 흐르는 길거리까지 일상의 소리들이 그대로 담기고, 대사가 없는 순간에도 감각적인 영상미와 배경음악이 그 침묵을 채웁니다. 매 에피소드가 한 편의 영화처럼 느껴지는 이유죠.
이러한 연출은 제작진의 명확한 의도에서 비롯됐어요. 유규선 PD는 이 프로그램은 “연애 프로그램을 만든다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발견한다에 가까운 프로젝트”라고 말했습니다. “연애물이라기보다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는 그의 말처럼 이 프로그램은 없는 사랑을 이끌어내기보다 일상적인 대화, 말투, 사소한 제스처 속에서 ‘이건 사랑 같다’고 느껴지는 순간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것이 목표였어요. 그래서 인위적으로 자극을 만들어낼 필요가 없었죠.

댓글 반응은 이러한 전략이 통했음을 보여줍니다. 출연자를 평가하거나 비방하기보다 사람들은 순간의 장면을 복기하고, 분위기를 이야기합니다. ‘저 감성 좋았어’, ‘그 장면에서 울컥했어’ 같은 반응이 쌓였죠.
이 콘텐츠는 누가 누구를 선택할지, 누가 더 인기 있을지라는 결과와 비교의 프레임을 벗겨내고 ‘사람이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 그 자체에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의도된 감정을 주입하는 대신 시청자의 감정이 스스로 피어나고 자라날 여백을 주었어요. 그래서 거부감이 없었죠. 결국 72시간 소개팅의 성공은 화려한 튜닝의 승리가 아니라 덜어낸 끝에 도달한 ‘순정’의 힘이었습니다.
☑️ 브랜드를 말하지 않는 브랜드 홍보 전략이라고?
하지만 이 콘텐츠를 단순히 ‘잘 만든 연프’로만 보면 놓치는 게 있어요. 이 프로그램은 여행 플랫폼 여기어때와 콘텐츠 제작사 블랙페이퍼가 함께 만든 브랜디드 콘텐츠인데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른 브랜디드 콘텐츠와는 달리 영상엔 여기어때의 로고도, 서비스 설명도, 예약 버튼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채널 프로필과 각 콘텐츠의 더보기란에 들어가야 브랜드 이름과 숙소 정보 링크만을 겨우 발견할 수 있었죠.
이 지점이 흥미롭습니다. 치열한 기업 경쟁에서 브랜드 홍보가 없는 브랜디드 콘텐츠가 어떻게 전략이 될까요? 여기어때는 이 콘텐츠에서 “여행할 때 여기어때🎵”라는 익숙한 메시지를 반복하지 않습니다. 대신 소비자가 여행을 먼저 상상하도록 만드는 구조를 선택했죠.

각 영상의 댓글을 보면 사람들은 ‘여행 가고 싶다’, ‘저런 순간과 감정들을 다시 겪어보고 싶다’며 콘텐츠 속 여행과 사랑의 순간에 몰입해 있습니다. 즉, 브랜드가 무엇을 제공하는지를 설명하지 않아도 브랜드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먼저 각인되는 것이죠. 이때 브랜드는 전면에 나서지 않아요. 소비자가 먼저 ‘여행하고 싶은 감정’을 떠올리게 만든 뒤, 그 감정의 출처로 뒤늦게 발견되는 위치를 선택합니다. 한 발 물러난 전략이지만 상품이 아니라 감정의 기억에 먼저 연결되었기 때문에 브랜드는 오히려 더 선명하게 인식되죠.
최근 브랜드 온드미디어의 흐름도 이와 맞닿아 있어요. 브랜드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브랜드의 색을 덜어내고 소비자의 공감과 몰입을 먼저 설계하는 방식이죠. 이른바 로고리스 전략! 로고리스 전략은 브랜드 로고나 서비스 설명을 최소화하고 콘텐츠 속 감정과 경험을 통해 브랜드를 간접적으로 각인시키는 걸 말하는데요. 조직의 정체성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브랜드 로고를 버리는 데엔 이유가 있어요. 기존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새로운 소비자에게 어필하기 위함이죠. 제품과 서비스 노출이 아닌, 브랜드 철학과 본질에 초점을 둔 콘텐츠는 소비자가 브랜드를 진정성 있고 자연스럽게 인지하도록 만듭니다.
이러한 로고리스 전략으로 운영되는 브랜드의 유튜브 채널로는 벅스의 essential;, 토스의 머니그라피, 컬리의 일일칠이 대표적이에요. 잠시 같이 살펴볼까요?
🎼 일상에 음악을 페어링하다, 벅스의 essential;

이 플레이리스트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essential;은 벅스의 음악 서비스라기보다 하루의 분위기를 음악으로 정리해 주는 큐레이션 콘텐츠에 가깝습니다. 채널 어디에도 벅스라는 브랜드를 강하게 드러내지 않지만 음악이 필요한 순간마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선택지가 되죠. 브랜드는 전면에 나서지 않지만 일상에 스며드는 방식으로 존재감을 확보한 사례랍니다.
이 포지션은 사업 확장 방식에서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essential;은 유튜브라는 플랫폼에 머무르지 않고, 공간·이동·라이프스타일 영역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왔어요. 서울신라호텔, 스타벅스와의 공간 큐레이션 협업, BMW·MINI·기아 PV5 차종에 탑재된 전용 플레이리스트 앱, 의류 브랜드 지이크와의 협업 상품은 모두 동일한 역할을 다른 환경에서 반복하는 시도로 보입니다. 즉, 플랫폼은 달라졌지만 essential;이 담당하는 것은 여전히 음악이 필요한 순간을 정리해 주는 역할이죠.
2026년을 맞아 essential;은 이 역할을 한 단계 확장합니다. 플레이리스트를 선별하는 채널을 넘어 음악이 만들어지는 출발점이 되겠다는 방향 아래 오리지널 음원 프로젝트 ‘essential; studio‘를 론칭했어요. 이 시도는 essential;이 음악을 큐레이션하는 브랜드에서 음악이 시작되는 환경으로 역할을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추천의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이 구축해온 감성적 맥락 안에서 새로운 결과물이 나오도록 설계한 것이죠.
💸 사람과 삶을 중심에 둔 돈 이야기, 토스의 머니그라피
알고리즘을 타다 보면 한 번쯤은 이런 썸네일을 마주친 적 있으시죠? 머니그라피는 토스라는 브랜드를 내세우지 않고 돈을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삶’으로 풀어냅니다. 재테크 팁을 나열하기보다 돈 앞에서 흔들리는 감정, 선택의 순간, 불안과 욕망을 이야기하며 금융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의 언어로 번역하죠.

채널 인기에 힘입어 인기 시리즈인 ‘B주류경제학’ 외에도 ‘토킹 헤즈’, ‘B주류초대석’ 등 여러 콘텐츠 시리즈가 제작되었답니다. (참고로 지난 B주류초대석에는 72시간 소개팅이 다뤄지기도 했어요.) 중요한 건 ‘많다’는 사실이 아니라, 토스가 금융이라는 자기 상품이 놓인 ‘맥락’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 금융을 이해하게 만드는 미디어로 시청자는 머니그라피의 팬이 되고, 팬덤이 커질수록 토스의 브랜드 가치 또한 축적되죠.
유형의 제품을 판매하지 않는 금융사에게는 인지도와 신뢰도가 곧 서비스의 성패를 가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상품보다 경험, 스토리텔링에 반응하는 디지털 세대가 늘어나는 상황 속에서 브랜드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녹인 브랜디드 콘텐츠의 중요성은 앞으로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 셀럽의 레시피를 만나보세요, 컬리의 일일칠 – 177

냉터뷰로 유명한 채널이죠! 고구마팜에서도 언급된 바 있는데요. 인기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를 초대해 토크쇼 형식으로 일상의 식탁과 그 사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최근에는 ‘부승관의 비비디바비디부’, ‘쇼타로의 디저트’로도 많은 화제를 모았죠. 영상 속에서는 컬리의 상품 설명이나 할인 정보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대신 셀럽의 취향, 요리 습관, 집에서의 루틴 같은 따라 하고 싶은 먹는 순간의 분위기가 중심이 된답니다. 덕후라면 내 최애의 레시피는 놓칠 수 없죠. 그런데 이 재료들, 대체 어디서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요?

짜잔! 이러한 반응을 예측한 듯, 모든 영상 하단에는 컬리 홈페이지로 이어지는 링크가 더보기란과 고정 댓글로 달려 있는데요. 이를 통해 시청자들은 자연스럽게 영상 속 레시피와 식재료를 접하고, 일일칠의 콘텐츠 소비자에서 컬리의 소비자가 됩니다. 컬리의 치밀한 타이밍 설계 어떠신가요?
🖇️ 사람과 브랜드 사이, 감정을 설계하고 콘텐츠로 연결하라
이렇게 익숙한 콘텐츠들 뒤에 큰 회사들이 있었다니, 정말 신기하지 않나요?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이 브랜드들의 공통점은 단지 로고를 숨겼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이들은 모두 로고리스로 시작했지만, 영영 브랜드를 숨긴 것이 아니라는 점이죠. essential;, 머니그라피, 일일칠, 그리고 때때때 모두 처음엔 로고리스로 시작해 콘텐츠가 성장하면서 각 브랜드에서 만든 콘텐츠임을 자연스럽게 드러냈습니다. 결국 로고리스 전략은 브랜드를 끝까지 숨기는 방식이 아니라, 언제 어떻게 브랜드를 드러낼지 타이밍을 설계하는 전략입니다.
그렇다면 이 전략은 왜 효과적일까요? 이 브랜드들은 모두 자기 상품을 기능이 아니라 상태로 재해석하고, 브랜드 감정을 재구축했습니다
✈️ 여기어때는 여행 예약 서비스를 → 일상 속 경험하고 싶은 감정으로
🎵 벅스는 음원 플랫폼을 → 하루의 분위기로
💵 토스는 금융 앱을 → 불안이 줄어드는 상태로
🛒 컬리는 식재료 배송을 → 따라하고 싶은 식사의 순간으로
72시간 소개팅이 ‘사람이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에 집중하며 시청자의 감정이 피어날 여백을 준 것처럼 이 브랜드들도 상품 설명 대신 감정이 먼저 자라날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곧 이것이 바로 브랜드 이미지, 브랜드 자산이 됩니다.
콘텐츠도, 도파민도 과잉인 시대. 브랜드의 승부는 ‘얼마나 많이 말하느냐’가 아니라 ‘언제, 어떻게 말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로고리스 전략은 바로 그 타이밍을 설계하는 법을 보여주는 전략이에요. 앞서 나서지 않고 의도적으로 숨어 있다가 적절한 순간에 발견되는 것. 그것이 바로 누군가의 마음속에 가장 오래 남는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에디터와 함께 오늘부터 숨은 브랜드들을 찾으러 가볼까요? 숨바꼭질할 사람 여기 여기 모여라🎶
*외부 필진이 기고한 아티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