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멋있다
② 인기가 많다
③ 경험을 판다
세 가지 모두 맞는 말이지만, ‘경험을 판다’가 가장 알맞은 답이에요. 사실상 도넛, 안경, 코스메틱을 파는 브랜드일 뿐인데 우리가 특별한 브랜드처럼 느끼는 것도 바로 경험 때문이죠. ‘경험’이라고 해서 거창해 보이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 브랜드가 어떤 건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도 소비자가 브랜드 그 자체를 느끼게 만드는 거예요.
노티드🍩
도넛 열풍의 시작이었던 노티드는 ‘우리 도넛 맛있어요’를 외치지 않았어요. 대신 키치한 디자인의 캐릭터와 스토어를 전면에 내세워 짜잔하고 등장했을 뿐이죠. 물론 기존 도넛보다 비싸면서 맛은 엄청나게 특별하지도 않아, 사먹었다가는 엄마한테 등짝을 맞을 것 같지만 노티드를 찾는 사람들에겐 그런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아요.
배고파서 도넛을 사먹는 게 아니라 ‘예쁜 곳에서 예쁜 도넛을 먹은 나의 경험’을 SNS에 자랑하기 위해서니까요. 맛있고 저렴한 도넛이 먹고 싶으면 던킨이나 크리스피 도넛을 집에서 먹는 것으로 충분해요. 물론 이렇게 일반적인 경험은 굳이 SNS에 공유하지 않겠죠? 이렇듯 경험 하나로 브랜드에 반응하는 소비자의 행동이 달라질 수 있어요. 혹시 노티드 인스타그램 계정을 보신 적 있나요? 소비자의 심리를 대변하는 것처럼 상위 9개의 게시글에 도넛이라고는 볼 수가 없어요. 브랜드 캐릭터가 전면에 나와 자신들이 얼마나 감각적인 브랜드인지 보여줄 뿐이죠.
젠틀몬스터😎
선글라스를 사러 가서 독특한 설치 미술 작품을 먼저 보는 곳. 젠틀몬스터를 한 문장으로 설명해 봤어요.
젠틀몬스터는 컬렉션 개념을 도입해서 매 시즌마다 과감하고 매력적인 디자인의 아이웨어를 만든다고 하지만 멋진 디자인으로 아이웨어를 파는 브랜드는 많죠. 그렇다면 젠틀몬스터는 어떻게 기억에 남는 브랜드가 됐을까요?
하우스도산을 예로 들어볼게요. 하우스도산은 젠틀몬스터의 패밀리 브랜드인 누데이크, 탬버린즈가 한 곳에 있는 공간이에요. 물론 개별적인 브랜드이긴 하지만, 이들 모두 젠틀몬스터의 도전정신 덕분에 태어났고 그런 브랜드 도전정신을 각자만의 방식으로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아요. 거대한 공간 속 미술작품과 함께 브랜드 제품이 있거나, 지금까지 본적 없는 파격적인 디자인의 디저트가 그것을 설명하죠. “젠틀몬스터는 이렇게 도전적인 브랜드야”라는 메시지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공간으로, 케이크 디자인으로 보여줘버린 거예요.
그래서 브랜드를 경험한 소비자들은 젠틀몬스터가 구축한 개성적인 이미지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제품을 기꺼이 소비하고 사용하게 되는 거죠. 심지어 새로운 선글라스를 사지 않더라도 시즌별 달라진 공간을 경험하기 위해 젠틀몬스터를 찾기도 해요. 물론! 다른 브랜드도 시즌별로 공간에 변화를 주지만, 다른 브랜드가 다루는 공간은 제품을 돋보이게 하는 소품 정도로 보여요. 공간이 주는 경험에 진심인 것은 젠틀몬스터만한 곳이 없거든요.
러쉬🧼
강남 한 가운데에서 머리 감았다는 글을 보신 적 있나요? 바로 러쉬 매장에서 일어난 일인데요. 러쉬 매장에서는 제품을 얼마든지 만져보고 매장에 마련된 공간에서 사용해 볼 수 있어요. 심지어 전 세계 어떤 러쉬 매장에 가도 똑같은 경험을 할 수 있죠. 하지만 이 정도의 경험은 러쉬가 아니라도 코스메틱 매장이라면 해볼 수 있어요. 러쉬는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매장 곳곳에서 브랜드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게 했죠.
러쉬 제품들이 어떻게 진열되어 있는지에도 그 답이 있는데요. 러쉬의 제품은 포장지 없이 날것의 상태로 마구 쌓여있어요. 마치 시장의 과일들처럼요. 언뜻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런 디스플레이 형식에도 브랜드 메시지가 녹여져 있어요. 시장처럼 누구나 편하게 방문할 수 있고, 포장을 최소화하여 자연주의 정신을 드러내면서 패키지보다 제품의 품질에 더 신경 쓴다는 것을 매장을 방문한 사람으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자연스럽게 느끼게 만들죠.
이처럼 브랜드가 어떤 것을 추구하는지 직접 경험하여 느끼는 것을 강조한 러쉬는 최근에 SNS 운영을 종료했어요. 이것 또한 소비자들이 러쉬를 SNS 콘텐츠가 아니라 오감으로 직접 경험하길 바람에서 비롯된 건 아닐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죠?
다양한 산업에서 제품의 질은 이미 충분히 고도화되어 있어요. 즉 소비자는 제품이나 단순한 서비스만으로는 브랜드를 선택하기 어렵다는 거죠. 그런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직접 브랜드를 찾고 기꺼이 소비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 바로 경험이에요.
특히나 윤리적 소비나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MZ세대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브랜드만의 차별화된 경험을 줘야 해요. 이들은 경험을 하고 소비로 이어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런 행동이 지속되었을 때 굳이 구매를 하지 않더라도 브랜드를 찾고, 좋은 점을 공유하는 등 브랜드의 팬을 자처하고 나서기도 하거든요.
이미 시장은 소유경제 시대에서 체험경제 시대로 바뀌었는데 책상 앞에 앉아서 ‘우리 브랜드 좋아요’만 외쳐서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끌 수 없으니, 우리 브랜드가 줄 수 있는 경험은 무엇이 있을지 고민할 때가 온 것 같아요. 젠틀몬스터가 나타나기 전엔 안경 브랜드가 특별한 경험을 줄 수 있는지 몰랐던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