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새해 다짐을 적으며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를 선언하게 되는 시즌이죠. But! 환골탈태를 꿈꾸는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에요. 소비자들에게 각인된 기존 이미지를 벗어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브랜드라면 집중! 올 한 해 주목할 만한 리브랜딩 사례를 모아보고 우리 브랜드에 적용할 만한 방법을 파악해 봅시다. 이름하여 2022년 리브랜딩 사례 연말 결산! 시작해 볼까요?
들어가기 전, 잠깐! 리브랜딩(브랜드 리뉴얼)이란?
단순히 디자인의 관점에서 Brand Identity(이하 BI)만 바꾸는 것이 아닌, 서비스의 핵심 가치와 이름, 심볼, 로고, 언어 등을 밀도 높게 정립하고 이들 간의 싱크로율을 높이는 것!
배스킨라빈스(이하 배라)는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시장점유율 1위의 아이스크림 브랜드죠. 올해(2022년)를 기준으로 77살이 된 장수 브랜드기도 하고요.
역사가 깊은 만큼 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총 5번의 리브랜딩을 진행했는데요. 지난 4월에 진행한 이번 리브랜딩은 무려 16년 만이라고 합니다.
시그니처인 ‘31’은 여전히 타이포 안에 그대로 녹아있지만, 로고의 전반적인 형태와 색상을 모두 변경했어요. 지금까지는 불규칙한 산세리프를 사용하며 통통 튀고 발랄한 느낌을 줬다면, 세리프 서체를 사용해 차분하고 세련된 느낌을 가미했습니다. B와 R의 속 공간이 마치 스쿱으로 퍼낸 아이스크림 같기도 하죠?
포인트 컬러가 바뀐 것도 눈에 띄는데요. 기존 색상 조합이 핑크와 블루였다면, 이번에는 블루가 빠지고 그 자리에 브라운 색상이 추가됐어요. 핑크와 브라운의 조합은 초창기 로고에 사용된 색상이기 때문에, 배라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소비자에게 향수를 자극합니다. 정리하자면 형태를 통해 현대적인 감성과 미래 지향적인 목표를 담고, 컬러를 통해 브랜드의 역사를 드러냈죠.
무슨 향수요? 처음 보는데? 하는 분, 계시나요?
네, 말씀드린 건 미국 본사에 해당되는 이야기고 국내 점포에는 아직 리브랜딩이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배스킨라빈스가 국내에 출범한 것은 1985년이지만, 본격적으로 보편화된 시점은 2000년대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전략이 효과적으로 통하지 않죠. 바뀐 브랜딩을 국내 점포에 바로 적용하지 않는 이유라고 볼 수 있어요. (만일 교체하더라도 새로운 점포부터 순차적으로 적용할 예정이라고 해요!)
미국 본사는 BI와 더불어 슬로건 또한 ‘Seize the Day(현재를 살아라)’를 변형한 ‘Seize the Yay’로 변경했는데요.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과 같은, 사소하고 즐거운 순간을 축복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아이스크림이 주력 상품임을 확실하게 피력하던 지난 슬로건, ‘One flavor for each day of the month(한 달 31일 내내 새로운 맛을 선사한다)’과 비교해보면 브랜드가 주력하고자 하는 영역이 ‘맛’에서 ‘즐거운 순간’으로 확 넓어진 게 느껴지죠?
리브랜딩 공표 당시, 순간을 기념할 만한 한정판 굿즈로 스케이트보드, 모자, 자전거, 티셔츠의 제품군을 선보이며 브랜드가 아이스크림에 국한되지 않고 조금 더 생활 전반 영역에 녹아들게끔 유도했어요.
익숙함이 지니는 힘이 크기 때문에 리브랜딩에 따르는 필연적인 반응이겠지만, 공개한 직후에는 ‘예전 로고가 낫다’라는 의견이 많았는데요. 초반 우려와 달리 현재 미국 현지에서의 반응은 꽤 좋은 편이라고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이전이 나은데?’, ‘지금이 나은데?’ 하며 의견이 분분하실 것 같은데, 배라의 리브랜딩 전략은 그래픽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 사업 영역 확장을 노리는 브랜드라면 참고하기 좋은 사례예요.
티빙은 국내의 OTT 서비스로, 다채로운 오리지널 콘텐츠로 국내의 유사한 플랫폼들 가운데 독보적인 위상을 지니고 있죠. 2020년 10월경 CJ ENM으로부터 독립 출범 후, 2022년 4월경 브랜드 이미지를 좀 더 공고히 확립하기 위해 처음으로 리브랜딩을 진행했어요.
우선 워드마크부터 보자면, 정체(평균적인 글자의 장평)에서 장체(평균보다 좁은 너비)로 교체하고 굵기와 마감을 정리했어요. 사선으로 기울어진 V를 배치하여 중심을 잡고, G에 라운딩을 적용하여 세련미를 더했죠.
기존 시그니처 컬러인 레드는 유지하되 색감을 조절했고, 또 다른 시그니처 컬러였던 퍼플은 삭제하고 새롭게 민트(Cyan) 색상과 화이트 색상을 추가하며 빛의 삼원색 효과로 스포트라이트를 연출했습니다. 이런 연출은 스포트라이트-빛의 특성상 주목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스크린으로 영상 콘텐츠를 감상할 때 뿜어져 나오는 빛처럼 보이기도 해서 티빙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은유하기도 하죠.
심볼은 로고에 사용된 T와 V가 결합한 형태를 띠는데요. 각각 ‘T’는 티빙을, ‘V’는 뷰어, 즉 이용자를 의미합니다. 공급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게 아닌, 이용자의 입장에 집중해 서비스를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담고 있죠. 이미 레드오션인 OTT 시장에서 ‘NO.1 K콘텐츠 플랫폼’으로 도약하기 위한 비전을 리뉴얼 심볼을 통해 드러냈습니다.
심볼에서 확장한 스포트라이트 그래픽은 브랜드의 개성을 표현하는 오브제로 확장되는데요. 콘텐츠 위에 형태를 오버레이 하여 강조하거나, 말풍선의 역할을 하는 등 높은 활용도를 보여줍니다. 워드마크-심볼-오브제까지 그래픽이 확장하는 과정이 자연스럽죠?
티빙의 리브랜딩은 지난 브랜드 운영 과정에서 도출한 인사이트를 통해 브랜드 가치를 재정립하고, 매체 전반에 걸쳐 일관성 있는 BI로 시각화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합니다.
지그재그는 카카오스타일이 운영하는 스타일 커머스예요. 2015년 쇼핑몰 즐겨찾기 앱으로 시작했고, 2019년 통합 결제 서비스를 도입하며 국내 대표 패션 플랫폼으로 입지를 굳혔습니다.
지난 8월, 패션에 국한되지 않고 라이프 스타일을 선택할 수 있게 돕는 서비스로 정체성을 확장하기 위해 리브랜딩을 진행했어요. 캐치프레이즈도 ‘3,500만 여성이 선택한 쇼핑 앱’에서 ‘브랜드, 패션, 뷰티와 라이프’로 변경하고, ‘영감’과 ‘발견’을 정체성의 키워드로 발표했죠.
여기서 잠깐!
지난 2021년, 배우 윤여정이 등장한 브랜드 캠페인에서 “니들 맘대로 사세요”라는 메시지로 화제를 모았던 것, 기억하시나요? 소비자 반응이 긍정적이었고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도 높아졌으니, 이대로 서비스만 확장해도 되는 것 아니야? 싶을 수도 있을 텐데요.
카카오스타일 크리에이티브부문 부문장 심준용 디렉터의 인터뷰에 따르면, 성공적인 바이럴 마케팅 덕분에 브랜드를 각인시키기엔 좋았으나, 일회성의 캠페인 메시지였기 때문에 브랜드 정체성은 여전히 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해요. 캠페인은 재미있고 젊은 감각이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던 거죠.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캠페인을 통해 드러냈던 감각을 브랜드 전반에 녹여내기 위해, ‘일관성’과 ‘지속성’에 방점을 둔 리브랜딩이 필요한 시점이었죠.
자, 그럼 1) 개인화 추천을 넘어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고! 2) 일관성 있는! 서비스로 성장하겠다는 포부를 어떻게 브랜딩에 녹여냈는지 살펴볼까요?
마찬가지로 워드마크부터 살펴볼게요. 소문자에서 대문자로 변경된 게 눈에 띄는데요. g 형태의 곡선이 강조된 아기자기한 기존 로고와 달리 직선적인 느낌이 두드러집니다. 여기에 장체를 적용해서 너무 묵직해지지 않도록 했죠. 메인 포인트 컬러인 핑크 색상도 유지하되 조금 더 차가운 계열로 수정했습니다. 워드 마크와 컬러를 통해 대담하고 ‘쿨’한 느낌을 담았어요.
브랜드를 관통하는 전체적인 콘셉트는 ‘패션 매거진’! 매거진에 통용되는 시각 언어(대담한 포즈나 톡톡 튀는 컬러)를 다각면으로 활용해 브랜드가 추구하는 성장 방향성을 드러냈습니다. 서비스 자체는 패션을 넘어 라이프까지 넓어졌지만, 브랜드를 설명하는 이미지는 조금 더 패션과 밀접해졌는데요. 이는 경쟁 서비스 사이에서 독보적인 ‘트렌디’ 함을 내세워 ‘영감을 주는 큐레이터’로 자리하겠다는 전략으로 볼 수 있어요.
변경된 BI는 UI/UX, SNS 콘텐츠 등 모든 영역에 새롭게 적용됐는데, 그중 기존에 ‘모아보기’라는 이름으로 기능하던 영역을 디벨롭한 ‘발견’ 탭이 대표적입니다. ‘발견’ 탭에서는 누구나 새로운 트렌드, 스타일, 아이템을 발견할 수 있도록 매거진 형식으로 스타일을 추천 및 소개합니다. 지그재그가 밝힌 포부와 맞아떨어지는 콘텐츠 전용 공간이죠.
더불어 BI 개편에서 끝나지 않고 새로 정립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내부 크리에이티브 부문 인력을 올해 초 대비 2배 이상 확대했다고 하는데요. 편리한 사용자 경험을 위해 인터랙션 디자이너, 모션 디자이너 등 직무도 신설했다고! 새로운 정체성의 확립을 위해 안팎으로 변화를 꾀한 전략적인 사례예요.
토스는 비바 리퍼블리카가 개발한 송금 서비스 앱이에요. 공인인증서나 보안 매체 없이 빠르고 쉬운 송금을 할 수 있는 게 특징이죠. 지난 9월에 이뤄진 이번 리브랜딩은 2019년에 진행했던 대대적인 리브랜딩 이후 불과 3년 만입니다. 일반 기업의 리브랜딩 주기가 최소 5~10년인 점을 감안하면 굉장히 짧은 기간만에 바꾼 셈이죠. 지난해 ‘토스증권‘과 ‘토스뱅크‘ 출시와 더불어 올해 말 오프라인 결제 단말기 서비스인 ‘토스플레이스‘까지 론칭할 계획을 밝혔는데요. 서비스 범위가 넓어진 만큼 더 큰 차원의 브랜드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 이번 리브랜딩 의도입니다. 대표적으로 슬로건을 ‘쉽고 편리한 금융’에서 ‘새로운 차원의 금융’으로 변경하며 브랜드 가치를 확장했는데요.
3D 심볼 로고를 통해 ‘새로운 차원‘을 표현했어요. 2D, 즉 평면에 머물던 금융 서비스를 ’공간‘이라는 더 높은 차원으로 혁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거죠. 블루 컬러의 원에 입체감을 부여해 3D 형태로 구현하여, 기존 심볼와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확실한 변화를 보여줬습니다.
3D 에셋이 디지털 환경에 최적화된 만큼, 심볼에 컬러와 질감을 배리에이션해서 새로운 차원을 다채롭게 시각화했어요. 나아가 리브랜딩 여정이 담겨있는 60초 분량의 3D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새로운 차원과 관점을 도전적인 방법으로 풀어냈습니다.
그럼, 토스는 왜 이렇게 ‘새로움’을 외칠까요? 토스가 말하는 새로운 금융이 무엇이길래요? 토스가 말하는 새로운 금융이란, 어린이/청소년/외국인/장애인/노인 등 금융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 모두 쉽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금융을 말해요. 실제로도 만 7세부터 만 16세까지도 사용할 수 있는 ‘토스유스카드‘를 만들거나, 국내 거주 외국인들을 위해 인터넷 전문 은행 최초로 ‘비대면 뱅킹 서비스‘를 출시하는 등 다짐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주고 있죠.
새로운 금융을 위한 토스의 도전을 세상에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리브랜딩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캠페인의 키워드는 ‘도전’. 다양한 도전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브랜드 필름을 제작하고 공식 캠페인 홈페이지를 공개했죠. 본인들의 도전을 홍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의 도전까지 응원했어요. 위에서 보여드린 3D 로고의 배리에이션을 응용해 ‘나만의 응원 카드 만들기‘라는 콘텐츠로 새로운 비주얼을 공유하게끔 기획했습니다.
여담으로, 토스는 새로운 로고를 위한 디자이너들의 고군분투기를 공개했는데요. 약 1년에 걸쳐 무려 1,000개의 로고를 그렸다고 해요.
‘새로운 차원의 금융’을 위한 ‘도전’을 비주얼+스토리로 풀어내고, 디자인에 진심인 기업인만큼 치열했던 디자인 과정까지 모두 공개하다 보니 보다 설득력 있는 리브랜딩 과정을 엿볼 수 있었는데요. ‘우리 브랜드도 리브랜딩이 필요하긴 한데 대체 어떻게 하는거지…’ 하고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토스의 여정을 참고하시는 게 도움이 될 거예요.
토스의 디자인은 매번 뜨거운 고구마인 만큼!
이번 리브랜딩에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따라오는데요. BI에 대한 호불호를 제외하고, 브랜딩의 관점에서 비판적인 입장도 풀어볼게요. 토스가 지금까지 추구하던 가치인 ‘쉬움‘, ’편리함‘은 유저 입장의 가치이자 ‘공을 던지듯’, 금융을 쉽게 접한다는 토스라는 브랜드 철학과 본질적으로 밀착되어 있어요. 반면 리뉴얼을 통해 드러낸 가치인 ‘새로움’은 기업 중심의 가치이자, 다수의 브랜드가 표방하는 단어인 만큼 무난하고 판단 기준이 모호할 수밖에 없고요. 이번 리브랜딩으로 ‘기업에서 추구하는 브랜드 가치’는 잘 드러났으나, ‘사용자가 인지하는 브랜드 이미지’와의 간극이 생겼습니다. 아직 풀어내야 할 숙제가 남아있는 셈이죠.
준비한 사례는 여기까지! 주제가 리브랜딩이다 보니 ‘어떻게 새로워졌는가’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했지만, 새로움에 현혹되어 온고지신의 태도를 잊으면 안 되겠죠? 브랜드의 철학과 역사를 잊지 않고, 중심을 잘 잡은 뒤 브랜드의 본질을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수단으로써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럼, 이 아티클을 읽는 분 모두 새롭게 다가오는 2023년에도 중심을 잘 잡기를 바라며! 저는 내년에 더 알찬 아티클로 돌아올게요.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