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미디어 플랫폼 역사는 넷플릭스 전후로 나뉜다.
덕심이 진하게 배였지만, 틀린 말도 아닙니다. 국내외 OTT 대전, 온라인 스트리밍 일상화, 오리지널 콘텐츠 열풍의 중심엔 바로 넷플릭스가 있잖아요. 개인적으로 넷플릭스는 전기차 시장의 테슬라, 모바일 시장의 애플처럼 대체 불가한 상징성을 갖는다고 생각해요. 이들이 향하는 곳이 업계의 지표가 된다는 것도 공통점이고요.
뉴미디어에 사는 저는 늘 넷플릭스의 발자취를 좇습니다. 그 길은 우회이든 직행이든 간에 (역행은 못 봤습니다) 어쨌거나 의미 있는 화두를 남기거든요. 2022년을 여는 넷플릭스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아 보이고, 함께 나누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조금 더 앞선 나날부터 짚고 넘어가야겠네요.
▶ 구독 서비스 도입과 온라인으로의 이전
넷플릭스는 DVD를 취급했던 설립 초기부터 월정액 멤버십을 운영했습니다. 경쟁사 고객이 연체료 문제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을 캐치해 오프라인 구독 서비스를 도입한 건데요. 멤버십에 가입하면 우편을 통해 DVD를 대여해 주고 기한에 맞춰 알아서 수거해가는 시스템이었습니다. 2002년 70만이었던 구독자는 2005년 360만까지 늘어나며 눈부신 성장을 이룹니다.
설립자들의 회고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애초부터 온라인으로의 이전, 디지털라이제이션(Digitalizaiton)을 고려했다고 합니다. 다만, 기술의 발전이 그것을 따라오지 못했을 뿐이었죠. 이른바 ‘초고속 인터넷’이 안정되기 시작한 2007년, 넷플릭스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그 후 3년간 서비스 기기를 TV뿐 아니라 게임기와 모바일로 넓혔고, 북미와 중남미로 서비스 지역을 확대합니다. 드디어 OTT(Over The Top) 시대가 열린 겁니다.
▶ 디즈니 제국을 위협하는 ‘맞춤형 콘텐츠’의 힘
수많은 기업이 OTT 시장에 뛰어든 2010년대, 넷플릭스는 콘텐츠에 주목합니다. 빅데이터와 알고리즘 분석이라는 무기를 쥐고 ‘정주행 콘텐츠’(Bingle-worthy)를 파헤치죠. ‘사용자가 선호하는 배우와 캐릭터는?’, ‘시청 지속 시간이 높은 장르와 연출 기법은?’ 을 통해 찾은 답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으로 이어집니다. 2013년 오리지널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가 성공적인 출발을 알렸고,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기묘한 이야기> 등 새로운 장르도 연이은 히트를 기록합니다. 이제 넷플릭스가 메이저 제작사라는데 의문을 품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2020년에 들어서 넷플릭스는 콘텐츠 제국 디즈니를 제칩니다. 2020년 4월 15일(현지 시각 기준) 넷플릭스의 시가총액은 1873억 달러(한화 약 222조 원)로 디즈니의 1866억 달러(한화 약 221조 원)를 조금 넘어섰습니다. 각국의 집콕 현상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은데, 저는 오리지널 콘텐츠에 적극적으로 투자한 넷플릭스의 선구안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 경계 없이 순환하는 콘텐츠, IP 활용의 좋은 예
콘텐츠는 곧 지적 재산권(IP)입니다. 잘 만든 원콘텐츠를 활용하는 것은 재산을 증식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넷플릭스는 2021년 하반기, 플랫폼 안에서 모바일 게임을 서비스하기 시작했는데요. 출시 시리즈 중 액션 RPG 게임 <기묘한 이야기: 1984>는 동명의 원작 시리즈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계관을 설계할 필요 없으니 효율적이고, 검증된 세계관을 차용하니 효과적이죠.
실제로 그레그 피터스 넷플릭스 COO는 “언젠가 우리는 게임이 영화나 TV 시리즈로 이어지는 것도 볼 수 있을 거다. 앞으로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 간 상호작용이 일어날 것”이라는 포부를 밝힌 바 있습니다.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없지만, 도전만으로도 의미 있게 느껴집니다. 수많은 콘텐츠가 순환하지만, 플랫폼은 단 하나이기에 가능한 구상이니까요.
▶ <솔로지옥> 최종 커플을 직접 선택할 수 있다면?
2022년 넷플릭스는 어디에 주목하고 있을까요? 이제부터 소개할 흥미로운 소식이 이를 대변합니다. 얼마 전 미국에 이어 국내 넷플릭스에서도 일부 콘텐츠를 대상으로 신기능이 적용됐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이라는 버튼을 누르면 활성화되는 ‘Interactive polls’(대화형 선택지) 기능인데요. 재생 화면에 사용자의 의견을 묻는 객관식 문항이 나타나고, 문항을 터치하면 설문 결과가 공개됩니다. 확인한 바로는 영화나 드라마보다 비교적 시청 몰입도가 낮은 리얼리티 쇼를 중심으로 제공되고 있네요.
넷플릭스 코리아 답변
”<연애 실험: 블라인드 러브 시즌 1, 결혼식 그 후> <슈거 러시 시즌 1, 시즌 2, 시즌 3>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 시즌 1> <투 핫! 시즌 1, 시즌 2>에서 테스트 형식으로 랜덤 제공되고 있습니다. 아직 공식적으로 넷플릭스 모든 유저분께서 이용하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반응이 좋고 넷플릭스에 필요한 서비스라 판단된다면 추후 제공될 예정입니다”
사용자가 「여러분의 생각은」을 누르는 것은 스토리 전개에 아무런 영향력이 없습니다. 이 액션은 개입보단 몰입에 가깝습니다. 사용자는 선택을 통해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느낌을 받고, 결과를 보며 자신과 타인의 생각을 비교하게 되죠. 소통 방식이 다면화되면 콘텐츠와의 거리가 좁혀집니다. 넷플릭스는 이것이 곧 시청 지속 시간과 시청 동기의 강화로 이어진다고 보는 것 같아요. 두 가지가 충족되어야 콘텐츠가 자생력을 갖출 수 있고, 그런 콘텐츠일수록 IP로의 가치가 높을 테니까요.
지금까지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넷플릭스는 콘텐츠 배급사에서 제작사로 영역을 넓히며 성장했다
2️⃣ 다음 단계는 모든 종류의 콘텐츠 경험이 가능한 플랫폼으로의 도약
3️⃣ 더 많은 사용자가 더 오래 플랫폼에 머무는 락인(Lock-in) 전략을 펼치는 중
4️⃣ 결국 열쇠를 쥔 것은? 다름 아닌 사용자!
넷플릭스의 동력은 언제나 사용자에 있었습니다.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 구독 서비스를 도입했고, 사용자가 선호하는 콘텐츠를 제작했죠. 반대로 생각하면 편리하지 않거나 재밌지 않았다면 선택받지 못했을 서비스고 콘텐츠일 겁니다. 저는 그래서 넷플릭스가 좋습니다. ‘판은 내가 깔게’ 와 같은 박력과 ‘선택하시겠습니까?’ 와 같은 정중함이 공존한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