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도서전이 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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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SIBF인가

5일 동안 10만 명. 서울국제도서전이 이룬 쾌거다.

지난 6월 1일부터 6월 5일까지 코엑스에서 서울국제도서전(Seoul International Book Fair)이 열렸다. 몇몇 책을 좋아하는 열성 독자들이나 찾겠거니 하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오픈 첫날, 입장 시간 15분 전쯤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내 앞에 약 3~400명의 방문객이 줄지어 서 있었다. 좀처럼 끝을 찾기 어려운 대기 줄을 보고서는 사람들이 이렇게 책에 관심이 많았나 싶더라.

그럼 이들이 다른 것도 아닌 ‘도서전’에 열광한 이유는 무엇일까? 3년 만의 대규모 오프라인 행사라는 단순한 이유를 꼽기에는 조금 섭섭하다. 직접 도서전을 방문하며 느낀 흥행 포인트를 짚어보고자 한다. 각 출판 브랜드의 캐릭터가 담긴 부스부터 배달의민족, 뉴닉, 어글리어스, 플라스틱 방앗간 등 출판과 접점이 없는 브랜드들이 어떤 식으로 도서전에 녹아들었는지도 살펴볼 예정. (참고로, 첫날 3시간 이상 머물렀는데도 못 본 전시가 있어 마지막 날 다시 방문했을 정도로 알찼다. 도서전의 처음과 끝을 함께했다는 나름의 자부심을 안고 글을 쓴다.)

SIBF로 말할 것 같으면

서울국제도서전(SIBF)은 1954년부터 시작해 70년 가까이 출판사, 저자, 독자가 만나는 대규모의 책 축제다. 1995년부터는 국제도서전으로 탈바꿈하고, 책을 경유한 외교의 장으로 구실 했다. 온오프라인 행사를 병행하며, 입장 인원 제한을 두고 코로나 시대를 힘겹게 통과해 맞이한 2022년.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제는 ‘반걸음 蹞步 One Small Step’이다. 한걸음은 아닐지라도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반걸음.

출처 서울국제도서전 홈페이지 / 인터랙티브 요소가 담겼다.

긴말 필요 없이 도서전 기획이 좋았다. 주제전시인 ‘반걸음’부터 아름다운 30여 권의 책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등 자체 전시도 매혹적이었다. 도서전의 비대면 첫인상인 공식 홈페이지 UX/UI에도 신경을 쓴 듯했고, 메이저 출판사와 독립출판사들이 꾸린 빼곡한 마켓, 눈길과 발길을 붙잡는 연사들의 강연까지, 그 자체로 즐길 거리가 충분했다.

그냥 나열만 하기엔 아쉬워서 몇 부분을 간단히 소개해 보고자 한다.

출처 📸 by me

먼저 주제전시인 ‘반걸음’에서는 비틀거리는 반걸음, 전진하는 반걸음 등 5단계로 약 600여 권의 책을 큐레이션 했다. 잠깐 훑어보고 나갈 심산이었지만, 전시 부스에 들어선 순간 걸음을 늦추고 어떤 책이 어떤 주제로 묶여 있는지 살펴보게 됐다. 뉴닉, 어글리어스 마켓 등 브랜드가 포진한 곳이기도 한데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서 다루겠다.

‘책 이후의 책’에서는 디지털 시대를 관통하며 책이 어떻게 살아남고 있는지 기록되어 있었다. 종이책의 위엄을 잠시 내려놓고 E-Book, 오디오북으로 뻗쳐 나가는 서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았고, 영화, 드라마, 게임 등 2차 콘텐츠로 되살아나는 책의 힘에 대한 낙관도 담겨 있었다.

출처 📸 by me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전시는 단순히 30권의 책을 펼쳐 놓은 것이 아니다. 직사각 디스플레이에 책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담아, 포토존으로 기능하게 했다. 관람객은 책의 물성을 직접 느끼고, 전문가들의 심사평을 읽고, 책과 자신을 한 프레임에 담으며 오래도록 체류했다.

연사들의 강연도 인상적이었다. 동물, 퀴어, 장애, 디지털화 등 시대와 적절하게 공명하는 주제로 강연과 대담이 진행됐다. 특히 김영하 작가의 강연은 객석을 채우고도 외부에 몇 겹의 관객들이 강연장을 둘러쌀 정도였다. 그 외에도 조승연, 장기하, 한강 등 관객 파워가 있는 연사들이 마이크를 잡았다. 엘르보이스가 기획한 ‘진정한 열망 바라보기 X 엘르보이스’에서도 김겨울 사회자와 황선우, 김사월, 황현주 연사를 찾아온 팬이 많았다.

출판사는 달라 달라

역시는 역시였다. 출판 브랜드들도 큰 규모의 행사는 오랜만일 텐데도 능숙하게 브랜드 색을 가득 채워 공간을 꾸렸고 각종 혜택으로 발걸음을 유도했다.

민음사

“노란 부스 안에서 주제별로 책을 나눠 놓은 것이 인상적”

출처 인스타그램 @minumsa_books

부스는 그 자체로 짜임새 있었다. 북토크를 진행할 공간, 주제별로 단정하게 분류된 책들, 노란색과 캐릭터 디자인으로 멀리서도 ‘저긴 민음사니까 이쪽으로 가면 되겠다’하며 지표로 사용할 정도로 영역 표시를 확실히 했다. 도서전이 열릴 무렵, 민음사는 1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파워를 제대로 활용했다. 도서전을 준비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담아 유튜브에 올렸고, 책보다는 콘텐츠가 재밌어서 구독하던 이들에게도 도서전 소식을 알리고 기대감을 높였다. 기본 10% 할인 혜택, 북클럽 회원들에게 추가로 제공한 20% 포인트 차감 할인 혜택도 민음사 부스를 발 디딜 틈 없게 하는 데 한몫했다.

문학동네

“북클럽 회원이 아니라고? 나갈 때는 당신도 북클럽 회원일 것”

출처 인스타그램 @munhakdongne

민음사가 기존 북클럽 회원들을 대상으로 할인 혜택을 더했다면, 문학동네는 북클럽 모시기 전략을 택했다. 내부에 북클럽을 소개하는 공간을 만들고 즉시 현장 가입할 수 있게 했다. 북클럽 신규 가입자 및 기존 가입자에게 팔찌를 채워 소속감을 강화했고, 꽝 없는 ‘뽑기’의 기회도 제공했다. (직원분께 건네받은 500원에 염원을 담아 뽑기 손잡이를 돌린 결과, 동구밭 거품입욕제를 뽑았다!) 인증에는 제격인 포토부스(관련 아티클 참고)를 도서전으로 끌고 들어왔다. 설문조사를 통해 책 처방을 해주는 ‘문동이의 금쪽상담소’ 프로그램도 있었다. 레트로의 대명사 뽑기, 실패 없는 포토 부스 등 핫한 마케팅 수단을 활용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안전가옥

“전직원이 구매 창구로 빨려들어가게 하는 말빨을 탑재한 영업사원”
SF 장르로 사랑받는 출판사 안전 가옥도 셀카를 찍을 수 있는 거울을 설치해 포토존에서의 인증 기능을 강조했다. 다른 포인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직원들의 영업 능력을 높이 사고 싶다. 그들은 덕후의 마음으로 열과 성을 다해 책을 영업했다. 혹자는 안전가옥을 ‘도서전 안의 러쉬’라 평했다. (친근하게 침투하는 직원들로 유명한 러쉬. 방심하고 들어갔다가 머리를 감고 나왔다는 일화가 있다.) 나도 안전가옥 직원분의 설명을 듣다가 홀린 듯이 책 한 권을 집어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출판사들은 배정 받은 공간을 각자 다른 방식으로 꾸몄으나, 인증 욕구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은 동일하다.

도서전의 중심에서 우리 브랜드를 외치다

책으로 가득한 도서전에 책과 접점을 찾기 어려운 브랜드들도 출격했다. 그래도 연결점은 있다. 출판 외의 브랜드가 어떻게 도서전과 연결되었는지 살펴보자.

배달의민족

“스토리텔링이 완벽한 부스, 줄 서게 하는 힘이 있는 기획”
‘배민 부스 보려고 도서전에 두 번 방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날 혼을 빼놓고 돌아다니다가 배민 부스를 놓쳤었다.) 멀리서 보기에는 음식과 관련된 글쓰기 프로그램이 전부였는데, 왜 사람들이 줄을 서면서까지 참여하려고 했고, 왜 대충 휘갈긴 것이 아니라 진지한 얼굴로 펜을 들고 있었는지 부스를 찬찬히 훑어봤다.

1. 참여자들은 원하는 글쓰기 주제를 선택할 수 있었다.

출처 📸 by me

취향, 냉면대결, 치킨대결, 채식, 습관, 데이트 등. 두루뭉술하고 커다란 주제가 아니라, 확실하고 구체적인 주제를 제시함으로써 펜이 종이에 닿기까지의 고민 시간을 단축시켰다. 자신의 일화를 부담 없이 써 내려가면 된다는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결과물은 가장 개인적이었고, 가장 특별했다.


2. 글을 쓴 모든 참여자는 ‘작가’가 되었다.

출처 📸 b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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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들의 이야기가 모여 책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포토존의 ‘작가 소개’, ‘작가의 말’, 작가의 발자취’ 등 배민 특유의 재치가 담긴 텍스트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글을 제출할 때는 작가라고 칭해주고, 포토존에도 ‘작가’ 키워드를 놓지 않았다. 이 부스에 들어오는 순간, 모두 작가가 된다. 부스 안의 모든 문구 하나하나가 감동적이었다. 글감 고르기, 글쓰기, 작가로 불리기까지의 스토리 구성도 완벽했다.

성공 포인트를 요약하자면 참여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브랜드의 재치를 살려 소소하지만 확실한 베네핏을 제공한 것. 물론 배민은 푸드 에세이를 담긴 뉴스레터 ‘주간 배짱이’를 매주 발송하고, 그 에세이를 모아 <요즘 사는 맛>을 출간한 전적도 있어 도서전과의 접점도 충분했다. 이제 배민이 도서전에서 얻은 기록물을 어떻게 활용할지 기대해 볼 차례다.

‘반걸음’을 뗀 브랜드들

“분야는 달라도 뜻은 맞닿아 있으니”

출처 서울국제도서전 홈페이지

앞서 언급한 ‘반걸음’ 기획전에는 뉴닉플라스틱 방앗간119REO어글리어스 마켓 등 10개의 브랜드가 전시돼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세상의 고정관념이나 회의를 넘어 용기 있게 반걸음을 떼었다’는 점. 브랜드들은 한곳에 모여 새로운 에너지를 발산했다.

출처 📸 b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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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닉의 부스는 오밀조밀 공간 활용을 잘했다. 좁은 공간에서 굿즈 판매와 브랜드 알리기를 동시에 수행해냈다. 뉴닉을 기존에 알던 찐팬에게는 티셔츠, 스티커, 메모지 등을 판매하고, 뉴닉을 잘 모르는 방문객들에게는 QR 스캔을 유도해 뉴스레터를 읽게 하고, 선물을 증정해 앱 설치를 유도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브랜드를 알렸다.

“OO이 SIBF에?”, “SIBF에 OO이?” 각각 브랜드와 서울국제도서전의 인지도를 다르게 평가하는 질문을 오가며 브랜드와 서울국제도서전은 각자의 타깃을 쉐어했다. 브랜드가 어떤 부분에서 반걸음을 떼었는지 궁금하다면, 자세한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해 보시기를.


그렇다면 질문에 답을 해볼 시간이다. 서울국제도서전은 어떻게, 왜 이렇게 흥행했나. 좋은 기획에는 사람들이 모이는 법!이라고 뭉뚱그리기엔 너무 달려왔다. 간략하게 세 가지 포인트를 짚어봤다.

✅ 연사로 나선, 관객을 부르는 인플루언서들(김영하, 겨울서점, 장기하, 황선우, 김사월 등)
✅ 브랜드 공간에 머무르게 한 각종 인증 요소 (포토부스, 포토존, 흐름이 있는 부스)
✅ 예상치 못한 접점을 공략한 타깃 쉐어(도서전-출판 외 브랜드)

영감을 주는 새로운 전시, 공간과 함께 다시 돌아올 테니 그때까지 Remember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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